1899년 경인선(노량진~제물포)이 개통으로 ‘철도’가 한반도에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경인선 철도 주변으로 인구가 증가하고 도시화가 확산됨에 따라 복숭아, 포도와 같은 근교 농업도 서서히 발전하기 시작했다.
부천지역 또한 경인선의 첫 노선 중 하나였던 소사역을 중심으로 복숭아 농사가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1914년 조선총독부의 부군통폐합에 따라 인천부, 부평군, 강화군, 남양군을 통합한 ‘부천군’이 역사에서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1931년 4월에는 계남면이 소사면으로 개칭되었는데, 1941년 1월에는 소사읍으로 승격되었다.
1962년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이 실시되면서 부천 지역은 경인지구의 중간지대로서 본격적인 산업화, 도시화를 겪게 된다.
특히 부천 지역 인근에는 구로수출산업단지, 서울온수산업단지, 인천수출산업공단 등 대표적인 산업공단들이 위치하였고, 관내에도 1962년 아이디얼미싱, 1964년 유니온, 1965년 현대약품, 1967년 태양연와, 1968년 건진기업, 신한일전기 등의 대표적인 기업들이 입지하였다.
1965년, 경인선 철도의 복선화가 진행되었고, 제2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에 서울-인천간 유료고속도로 건설계획이 포함되었다.
1967년 3월 24일 착공한 경인고속도로는 1968년 12월 21일 개통되었으며, 한국의 ‘고속도로’ 시대가 막을 올리게 되었다.
부천은 경인철 부설, 경인선 복선화, 경인고속도로 개통을 거치며 서울-경기-인천을 이어주는 교통망의 핵심지역으로 부상하였다.
또한 서울에 위치한 공장이 택지개발, 지가상승 등의 이유로 교통이 편리한 부천지역으로 이전하면서 기업체 수와 근로자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였다.
1973년 부천시 시 승격과 1974년 경인전철의 개통은 부천시의 유동인구가 거주인구로 변화하는 현상을 잘 보여준다.
이 시기 김포군 오정면(24.90㎢)이 부천시로 편입되었고, 서울의 지가 상승과 공해업소 이전방침에 따른 서울 소재 제조업체의 이전으로 인구의 대폭적인 유입이 이루어졌다.
1980년에는 부천시 인구가 22만 1,475명으로 증가하여, 연평균 증가율이 15.2%로 지난 5년 동안 2배로 증가하였다.
최종수정일 : 2024-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