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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만 번의 망치질, 비로소 빛나다.

수십만 번의 망치질, 비로소 빛나다.
- 은(銀) 주전자 50년 만든 명장, 홍재만

배를 곯지 않으려고 무작정 배운 기술이 금속공예였다. 먹고살기 위해 묵묵히 해온 그 일이 결국 평생 직업이 되어 버렸다. 한 장의 묵직한 은판이 그의 손을 거쳐 반짝반짝 아름다운 은(銀) 주전자로 탈바꿈할 때 가장 행복하다는 홍재만 명장.
수십만 번의 망치질을 거쳐야 비로소 하나의 작품이 만들어지는 은주전자처럼 자신의 인생도 어려운 일을 거치면서 더욱 단단해졌다며 웃는다.

글 김윤경 편집기획팀장, 사진 이보영 주무관
 



명장의 손끝에서 탄생하는 은주전자
우노실버 공방 홍재만(63) 대표의 작업장은 시끄러운 망치소리로 가득했다. 허리를 굽혀가며 은을 불에 달구고 망치질로 작업하는 그의 손끝은 온통 굳은살 투성이었다. “매일 금속을 톱으로 자르고 망치질을 하니까 손 상태가 이래요. 모르는 사람이 보면 손이 왜 저럴까 흉보겠지만, 이래 봬도 대한민국이 인정한 손이자 내 밥벌이예요”
홍 대표는 50년 경력의 베테랑 금속 명장이다. 지난 2017년 대한민국기로협회가 주최한 ‘대한민국 공예 명장대전’에서 전통수 공예 방식으로 제작한 은주전자로 금속 공예부문 ‘명장’에 선정됐다. 그는 같은 해 국제기로미술대전에 출전, 공예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은으로 주전자 형태를 만드는 것은 꾸준히 배우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하지만 각 부분을 이어서 붙이지 않고, 오직 하나의 은판을 두드려 주둥이까지 달린 입체적인 주전자를 만들기는 쉽지 않죠. 그게 기술이거든요. 오로지 망치질만으로 은주전자에 다양한 무늬를 집어넣는 것도 오랜 시간이 걸리는 고난도 기술이에요.”


▲은을 달구고 두드렸던 굵고 거친 그의 손마디가 지나온 시간들을 보여준다.
 


배고파 시작한 ‘금속공예’, ‘천직’이 되다
홍 대표는 1남 3녀 중 둘째로, 13살이 되던 해 외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이모부가 운영하는 금속 공방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배를 곯지 않으려면 기술이 있어야 한다는 말에 무작정 시작한 금속공예였지만, 선배들이 쉽게 기술을 가르쳐주진 않았다. 가난 때문에 공방 한구석을 빌려 먹고 자면서 일을 배우던 그에게 돌아오는 건 기술보다는 거친 선배들의 숱한 주먹질이었다. 눈물을 훔치는 날이 많았고, 너무 고되고 힘들어 집으로 도망친 적도 있지만, 사람들이 모두 퇴근한 시간 혼자 남은 작업장에서 이를 악물고 연마한 기술이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홍 대표는 그 모든 기술을 완벽하게 배우기까지 20년이 걸렸다고 한다.
“잠자리라고 해봐야 작업장 한쪽 벽에 나무판자로 가림막 하나 만들어서 간신을 몸을 뉘고, 자는 정도였습니다. 그때는 배운 게 없으니 기술이라도 좋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죠. 먹고살려면 다른 사람은 공방에서 쫓겨 나가도 나는 계속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를 악물고 기술을 배웠습니다. 너무 어릴 때부터 일하다 보니 철도 빨리 들었고... 결국, 그 절박함이 지금의 실력을 갖게 한 것 같아요.”

 

▲은판을 수십만 번 두드리다 보면 망치도 성한 곳이 없다.



독립운동가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자부심’
원래 홍 대표의 집은 가난이 대를 잇는 집안이 아니었다. 서울에서 내로라하는 부잣집이었다고, “저희 할아버지가 인암(仁菴) 홍병기 선생입니다. 천도교인으로 동학농민운동에 뛰어드셨고, 1919년 3월 1일 기미독립선언서를 발의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이시죠. 가족보다 나라를 먼저 생각하신 분이셨는데,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 사용하시면서 집안이 어려워졌다고 들었습니다.”
할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하신 분이라는 건 어린 시절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독립운동에 가산을 모두 쏟아부어 집안이 기운 것은 금속공예 기술자가 된 뒤에 알게 되었다.
“가난 때문에 할아버지를 원망해 본 적은 없습니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인생을 사신 거죠. 오히려 ‘자부심’이라는 단어를 항상 제 가슴속에 가지고 살아가고 있어요. 할아버지가 자손에게 재산을 물려주기보다는 독립된 나라를 넘겨주는 게 진정한 유산이라고 생각하셨듯이 저 또한 후대에 우리 금속공예 기술을 제대로 전수해 주고 싶습니다.”
 

▲우노실버 공방 한편에는 독립운동을 하셨던 할아버지 사진이 놓여있다.



금속공예 기술 잇고, 판로 개척되길 바라
기술과 전통을 이어가는 것이 가장 큰 자부심이라는 홍재만 대표.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오랜 시간 인내하며 배워야 하는 기술에 요즘 젊은이들이 선뜻 나서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내 금속공예 시장은 규모가 작고 너무 영세하다. 한국의 기술이 중국과 일본을 크게 앞서고 있어도 금속공예에 대한 우리나라의 사회적 관심이 워낙 낮아 문을 닫는 공방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금속공예 기술이 끊어질까 봐 걱정입니다. 공예품을 만들어도 이걸 내다 팔 국내시장이 활성화 안됐거든요. 국내에선 기술력을 인정하면서도 가격을 들으면 비싸다고 사지 않는데, 해외에서는 우리 품질을 인정해 구입하거든요. 해외로 나아가야 하는데, 제가 배움이 짧아 그런지 그 방법을 잘 몰라요.”
우노실버 공방 제품은 중국 바이어들이 가장 많이 구매해 갔었지만, 최근 몇 년간은 코로나19 때문에 그마저도 뜸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소원이오? 조그만 지원책이라도 있어서 금속공예 기술이 끊어지지 않길 바라는 거죠. 은주전자에 차나 술을 담으면 맛이 깊어지고 부드러워지는데, 좋은 은제품을 사람들이 많이 알아주고 사용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사람들 기억에 오랫동안 남을 수 있는 작품을 하나 남기고 싶은 거... 그게 바람이죠.”

우리나라에서 금속공예인으로 사는 길은 녹록지 않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듯이 그는 앞으로도 망치를 손에 쥐고 변함없이 제 길을 갈 것이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듯이. 은처럼 찬란하게.
 



우노실버
부천시 삼작로 156 3층
☎032-672-3761 / www.unosil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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