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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이 아닙니다. 한 땀 한 땀 만든 작품입니다”

“옷이 아닙니다.
 한 땀 한 땀 만든 작품입니다”

- 맞춤양복 명장, 조형희
 

말갛게 닦아놓은 커다란 유리창 너머 양복점 안에는 항상 깔끔한 양복을 입은 마네킹이 멋들어지게 서 있었다. 마네킹에겐 가장 최근에 만든 양복이 매번 바뀌어 입혀졌고, 새 양복이 걸릴 때마다 사람들은 창밖에서 발걸음을 잠시 멈추곤 했다.
양복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더 좋은 양복을 만들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졌다는 조형희 양복 명장. 그는 그렇게 50년 넘는 세월, 양복 짓는 바느질을 멈추지 않았다.


글 김윤경 편집기획팀장, 사진 이보영 주무관
 

▲조형희 양복 명장의 손길은 빠르면서도 정교하다.



바느질로 만들어 온 한결같은 인생
“손바느질을 기본으로 만듭니다. 재킷 안에 덧대는 여러 종류의 심지를 붙이는 것부터, 소매를 달고 옷깃 모양을 잡는 모든 과정을 일일이 손으로 꿰매야 좋은 양복이 만들어지죠.”
한 사람만을 위한, 1만 번의 손바느질. 맞춤복 한 벌은 기성복 열 벌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부천역 근처 맞춤 양복점 ‘조일라사’ 조형희(70) 대표는 양복과 함께한 인생이 어느덧 53년차다. “양복일? 18세부터 시작했어요. 나 어릴 때는 공부 많이 해서 성공하는 시대가 아니었어요. 변변한 기술 하나라도 있는 게 최고였지. 서울에 있는 양복점에서 심부름할 사람을 구한다는 친척 말에 양복 기술이라도 배울 수 있겠다 싶어서 무작정 찾아간 거죠.”
적성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냥 열심히 기술을 배워야겠다는 결심뿐. 처음에는 잘 가르쳐주질 않아서 심부름하며 눈치코치로 열심히 기술을 배웠다. 그렇게 조금씩 성실함을 인정받아 배운 기술로, 1980년 그는 부천 북부역 코너에 자신의 양복점 ‘조일라사’를 열었다. 아침 조(朝), 한일(一), 아침부터 부지런히 한결같이 하나의 길을 걸어간다는 의미로 그는 지금까지 양복 짓는 자부심으로 인생을 걸어왔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특별함, ‘맞춤양복’
당시 부천역 근처는 1970~80년대 서울 소공동처럼 양복점이 줄지어 생겨났고, 양복을 맞추려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이 일대에 양복점이 엄청 많았죠. 1986년 1월 15일 한국복장기술협회 부천지부가 생겼는데, 정회원만 120명이 넘었어요. 우리 양복점에만 해도 기술자가 20명 있던 시절이었으니까.”
제대로 된 기성복이 없던 시절, 특별한 날에는 모두 양복을 맞춰 입었다. 그때는 지하 단칸방에 살더라도 고향 내려갈 때는 양복 한 벌을 쫙 빼입고 가던 시절이었다. “명절엔 늘 양복을 맞추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렸어요. 당시 사람들이 너무 몰려서 명절 열흘 전부터는 주문을 안 받으려고 셔터를 반 정도 내려놓고 일하기도 했습니다.”
눈코 뜰 새 없이 천을 재단하고, 바느질하면서 숨 가쁘게 달음박질한 시간. 하지만 내 손에서 세상 단 하나뿐인 양복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조형희 명장과 40년 세월을 함께 해 온 재단가위




자부심과 믿음으로 버틴 세월
“우리 양복 만드는 사람들이 한창 잘나갔죠. 그러더니 1995년도 이후부터 슬슬 안 되기 시작하더라고요. 기성 양복이 인기를 끌기 시작하면서부터겠죠.” 대량화와 대형화에 밀려난 시대의 아픔이 조 대표에게도 고스란히 자리 잡았다. 기성복에 밀려 함께 양복을 짓던 사람들은 더러는 세탁소로, 더러는 옷 수선으로 하나 둘 업종을 변경했다. 그러나 그는 실력과 진정성만 있으면 고객이 다시 찾아온다고 믿었다. 그의 믿음은 2018년 한국맞춤양복협회 양복 명장으로 선정되면서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맞춤 양복은 개개인의 체형을 세밀하게 측정하고 손바느질을 하기 때문에 옷이 부드럽고 입체감이 자연스럽게 생겨납니다. 이렇게 만든 옷은 10년이 지나도 실루엣이 죽지 않습니다. 오직 한 사람을 위해 만든 옷, 언젠가는 사람들이 다시 찾아 줄거라 믿었습니다.”
평생 손에 익숙한 양복일이지만, 매장을 방문하는 고객은 큰맘 먹고 찾아주시는 분이기 때문에 그는 옷 한 벌 한 벌에 최선을 다해왔다고. 옷이라는 생각보다 작품을 만든다는 책임감으로 지금도 옷을 지을 땐 늘 마음가짐이 새롭다.
 



시대를 이어 기술이 끊어지지 않기를
허투루 하지 않는 솜씨 덕분에 대를 이어 조일라사를 찾아주는 손님도 많다.
“60대 손님이 우리 집에서 양복을 맞추는 게 소원이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 자식들이 환갑 기념으로 맞춰줘서 드디어 입게 됐다고 기뻐하던 모습이 생각나요. 그 분은 자식 결혼할 때 아들 예복을 맞추기 위해 다시 찾아주셨죠.”
100m 떨어진 곳에서도 기성복인지, 맞춤양복인지 단박에 알아차린다는 조 대표는 공장에서 찍어내는 기성복과 달리 맞춤양복은 원단을 고르고 사이즈를 일일이 재고 스타일을 만들기까지 오직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이 담겨 멀리서도 확연히 차이가 난다고 강조한다.
“좋은 기술이 사라지는 게 아까우니까 후계자가 있으면 전수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죠. 양복 짓는 기술은 단시간에 이뤄지는 게 아니거든요. 손기술과 경험이 하나하나 오랫동안 쌓여서 이뤄지는 거지. 근데, 요즘 그걸 누가 하려고 하겠어요?”

자식이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딜 때, 결혼을 앞두고 있을 때 양복을 지어주며 부모와 자식 간에 진정한 의미의 성년식이 이뤄졌던 장소, 양복점. 이제 곧 맞이하게 될 봄에는 자식이 아버지에게 할 수 있는 가장 품위 있는 선물로 ‘양복’을 맞춰드리면 어떨까? 옷이 아니라, 작품을 만든다는 자부심으로 버텨온 조형희 명장의 솜씨로 말이다.
 

조일라사
위치 : 부천시 부일로 493
운영시간 : 평일·토요일 오전 10시~오후 8시 / 일요일 오전 11시~오후 5시
문의 : 032-654-2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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