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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공간된 현충시설, 지속적인 관심 필요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4-07-09
조국의 독립을 위해, 6‧25전쟁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애쓴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과거에는 우리나라가 힘이 없어 도움을 받았지만 이제는 도움을 주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호국영령을 추모하고자 용문산전투가평지구전적비를 다녀왔는데, 많이 놀랐습니다. 과연 이곳에 기념비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탱크가 전시돼 있다.   ⓒ 이주섭 기자


주차하고 언덕을 오르다 보면 탱크 두 대가 보입니다. 조금 가다 보면 사진에 있는 기념비가 하나 있습니다. 언덕을 오르는 길에 시설물 표지판이 있는데, 나무에 가려서 글씨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안내 표지판  ⓒ 이주섭 기자




용문산전투가평지구전적비  ⓒ 이주섭 기자


용문산전투가평지구전적비는 찾았으나, 주변은 울창한 나무뿐이었습니다. 기념비 뒤에는 사유지 출입금지 안내판이 있어 더 이상 갈 수 없었지만 그 위로 비석이 하나 있습니다. 들어갈 수 없어 확대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사유지 출입금지 안내판   ⓒ 이주섭 기자




기념비 뒤쪽으로 풀이 무성하게 나 있다.   ⓒ 이주섭 기자


기념비가 관리가 되지 않는 모습에 호국영령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내려오면서 기념비에 다시 올라가서 묵념했는데, 이곳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용문산 전투는 1951년 5월 18일부터 30일까지 양평 북방의 용문산을 방어하던 국군 제6사단이 중공군 제63군 예하 3개 사단(187, 188, 189사단)의 침공을 격퇴하고 승리로 이끈 방어 전투입니다. 국군 제6사단은 중공 제63군의 공격을 받게 되자 경계 부대인 제2연대를 철수시키지 않고 경계지대 내에서 전면 방어 태세로 3일간 지탱했습니다. 이 지역에서 적을 물리치고 많은 전과를 올렸으며 계속해서 춘천 북쪽 부용산과 화천발전소를 공격해 탈환하고 작전은 종결되었습니다. 이 전투는 방어 전투의 승리일 뿐만 아니라 중공군의 공세를 저지하고 공세 작전으로 전환하는 일대 전기를 마련했다고 합니다. 용문산전투는 소수의 병력으로 다수의 병력을 막아내는 방어 전투의 모범으로서 6·25전쟁 최대의 전승으로 기록되었다는데, 지금 유적지는 유지‧관리가 안 되고 있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지자체는 물론 우리가 관심을 갖는다면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속상한 마음 가득 안고 내려오는데 발걸음이 무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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