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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옛길 `영남길` 따라 걸으며 만나는 문화유산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0-09-03
경기도에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을 비롯해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많은 문화유산들이 있다. 물론 우리가 문화유산을 직접 찾아가 보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없지만 요즘은 코로나19로 직접 문화유산을 찾아가는 것이 어렵다. 그래서 경기도는 문화유산들을 집에서 편하게 만나볼 수 있도록 경기도뉴스포털에 <경기도 문화유산을 찾아서> 영상을 제공하고 있다. <경기도 문화유산을 찾아서> 영상 보기 https://gnews.gg.go.kr/news/news_tv.do?page=2&s_code=C070&SchYear=&SchMonth= 꿈기자는 <경기도 문화유산을 찾아서>에서 소개된 곳 중 꿈기자의 집과 가까운 영남길을 다녀왔다. 조선 시대에는 한양과 지방을 연결하는 교통로가 있었는데 그중 경기도를 지나는 주요 6개의 도로망인 의주길, 경흥길, 평해길, 영남길, 삼남길, 강화길이 있었다. 경기도에서는 이러한 길들을 바탕으로 하여 새롭게 경기옛길을 조성하였으며, 꿈기자는 그중 영남길의 제3길 구성현길을 다녀왔다. 영남길은 성남에서 이천까지 116km의 길이에 과거 한양에서 대구를 거쳐 부산까지 이어지는 길이었다. 그리고 일본 사신과 조선통신사가 이 길을 이용하였다. 영남길은 다시 10개의 길로 나뉘는데 그중 제3길 구셩현길의 지명인 구성현은 삼국시대에 용인이 고구려에 편입되면서 옛 용인의 중심지가 되었던 지역이다. 그래서 구성현길을 걷다 보면 아직도 옛 용인의 중심이었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는데, 꿈기자는 마북동 석불입상과 민영환 선생의 묘소, 그리고 용인향교를 탐방해보기로 하였다.
마북리 석불입상과 석탑 안내 표지판   ⓒ 박중수 기자


​이제 본격적으로 영남길을 따라 문화유산을 찾으러 떠나보자. 이번에는 마북리 석불입상과 석탑, 민영환 선생의 묘, 그리고 용인 향교에 가볼 것이다. 세 유적지가 가까이에 있어 찾는 것이 어렵지 않다. 길을 가며 갈색 표지판을 찾으면 오늘의 목적지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구성현길 첫 번째 행선지는 마북리 석불입상과 석탑이다. 길가에 있는데 표지판도 나무에 가려져 있는 데다 가게들 사이에 있어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길을 가면서 구성초등학교 앞 버스 정류장 주변 나뭇잎들 사이를 유심히 살피면 찾을 수 있다. 마북동 석불입상은 용인시 향토유적 제52호이다. 석불입상이 있는 전각 앞으로 한자가 적힌 석탑들이 나란히 서있고 규모는 매우 작다. 아쉽게도 문화재 훼손을 막기 위해 울타리를 쳐놓아 직접 들어가서 관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석불입상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널리 유행하였던 마을 미륵 신앙의 일종이며, 민간에서는 치병과 기자, 마을의 수호, 그리고 기복 등을 빌던 불상으로 여겨진다고 한다.

민영환 선생 묘로 가는 안내 표지판   ⓒ 박중수 기자


두 번째로 민영환 선생 묘를 찾아갔다. 첫 번째 행선지인 마북동 석불입상 뒤편으로 구성초등학교를 따라 올라오거나 구성초등학교 정문을 지나 옆 골목으로 들어가면 된다. 이곳 역시 갈색 표지판이 보인다.

경기도 영남길 안내도와 방문 인증 도장을 찍는 꿈기자   ⓒ 박중수 기자


민영환 선생 묘를 관람하기 전에 경기도 영남길 안내도에 방문 인증 도장을 찍었다. 안내도는 스탬프함에 준비되어 있고, 경기도의 다른 문화유산들에 대한 설명과 문화유산의 위치가 표시된 지도가 함께 있어 이날 문화유산을 찾는 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민영환 선생 묘 앞에 도착 후 안내문을 읽고 있다.   ⓒ 박중수 기자


민영환 선생 호는 계정, 시호는 충정에, 호조판서를 지낸 민겸호의 아들이자 명성 황후의 조카이다. 고종 15년 문과에 급제했고 병조판서, 호조판서 등을 지냈으며 러시아의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참여하기까지 하였다. 그 뒤에는 광무 군부대신으로 있으면서 외국을 방문해 세계 여러 나라의 발전된 문물제도와 근대화 모습을 직접 경험했고, 귀국한 뒤 독립협회를 후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의 간섭에 맞서 싸우다 벼슬자리에서 밀려났고 1905년 일본에 의해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을사오적의 처형과 조약의 파기를 상소하였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에 결국 죽음으로 항거해 국민을 각성하게 할 것을 결심하고 고종 황제와 국민, 각국의 외교관 앞으로 유서를 남기고 집에서 자결하였다. 민영환 선생의 자결은 당시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고 그 뒤 많은 순국지사들이 그를 따라 자결하였다고 한다. 고종의 왕비인 명성 황후의 조카라는 사실은 꿈기자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민영환 선생은 교과서에도 사진과 함께 국민에게 남기는 유서가 나와 그저 을사늑약의 충격으로 자결한 독립운동가인 줄만 알고 있었는데 오늘 이렇게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어서 의미 있었다.

민영환 선생의 묘 전경   ⓒ 박중수 기자


민영환 선생의 묘소 우측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 비석이 있다. 또 곳곳에 민영환 선생의 일대기에 대한 안내판이 세워져 있어 민영환 선생의 업적을 다시 한 번 되새기는 시간이 되었다.

용인향교 입구 표지판과 표지석   ⓒ 박중수 기자


마지막으로 용인향교에 도착했다. 이곳도 마찬가지로 갈색 표지판이 보이며 입구에는 한자로 `용인향교`라고 적힌 표지석과 하마비(下馬碑)가 있다.

홍살문(왼쪽), 용인향교 안내문을 읽고 있는 꿈기자  ⓒ 박중수 기자


향교는 조선 시대에 각 고을마다 유학을 교육하고 유교 성현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 기관이다. 각 고을의 중심지에는 관아와 사직단, 그리고 향교를 설치하여 고을의 기본 틀을 만들고 질서를 바로잡았다. 용인향교는 용인의 중심지인 구성에 건립되었으며, 조선 초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전쟁 당시 대성전을 제외한 나머지 건물들이 소실됨에 따라 1963년 명륜당을 증건하고 현재까지 건물들의 외형을 갖춰가고 있다. 현재는 충효 교육과 전통문화 교육이 이루어지면서 교육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현대적으로 계승하고 있다. 향교 입구에는 홍살문이 있는데 이 홍살문은 향교의 영역을 나타낸다.

용인향교 명륜당(위), 내삼문(아래) 전경  ⓒ 박중수 기자


​용인향교는 가장 높은 곳에 제사 공간인 대성전이 있고, 대성전 앞쪽에 내삼문을 두어 신성한 곳으로 구분하였다. 그리고 용인향교 대성전에서는 매년 음력 8월 27일 공자를 비롯한 25명의 유교 성현에게 석전대제라는 제례를 지낸다. 대성전 아래에는 교육 기관인 명륜당이 자리하고 있는데, 드라마에서 보던 서당에서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영남길을 따라 문화유산을 찾아가 보니 표지판의 위치가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있고 관리가 잘되지 않아 알아보기 힘들었다. 또한, 주민들에게 길을 물어봤으나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 중간중간 길을 찾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주민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지역의 문화유산에 더욱더 관심을 가지고 관리에도 힘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꿈기자 또한 이번 탐방이 아니었으면 꿈기자의 동네에 이러한 문화유산이 있는 줄도 모른 채 지냈을 것이다. 경기옛길에는 지역의 문화유산과 민담, 설화, 그리고 지명의 유래 등이 담겨 있어 길을 걷는 재미와 함께 역사 공부까지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공간이다. 앞으로 다른 경기옛길도 걸어보고 싶다. 경기옛길 http://gcr.ggcf.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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