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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민기자단]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 `안성 독립운동 역사마을` 스탬프 투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5-03
[경기도민기자단]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 `안성 독립운동 역사마을` 스탬프 투어  ⓒ 경기도블로그


[최경숙 기자] 1919년 3월 28일부터 4월 2일까지 전개된 경기도 원곡·양성 지역의 3·1운동은 독립운동가 이유석· 홍창섭· 이근수· 이덕순· 최은식· 이희룡이 주도하고 마을 주민 2,000여명의 적극적인 참여로 독립운동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격렬한 만세운동 결과 이틀간 안성은 완전한 자유를 얻을 수 있었는데요. ​ 자유를 위해 격렬히 항쟁하던 그때 그 시기를 엿볼 수 있는 안성독립운동 역사마을 투어. 함께 떠나볼까요? 격렬한 만세운동이 펼쳐졌던 역사의 생생한 현장! 안성 독립운동 역사마을

[경기도민기자단]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 `안성 독립운동 역사마을` 스탬프 투어  ⓒ 경기도블로그


안성은 3.1운동 당시 전국의 어느 지역보다 활발한 만세운동을 펼쳤던 곳입니다. ‘양성면, 원곡면’은 전국 3대 실력항생지로 꼽히고 있는데요. 안성시에서는 ‘안성 독립운동 역사마을’을 조성해 그날의 독립정신과 희생정신을 기리고 있습니다.

[경기도민기자단]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 `안성 독립운동 역사마을` 스탬프 투어  ⓒ 경기도블로그


안성독립운동 역사마을에 방문하기 전에 홈페이지에서 미리 예약하면 좋습니다. 그냥 방문해도 되지만, 사전 예약을 하면 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을 들을 수 있습니다. 또한 스탬프 투어를 신청하면 기념품도 받을 수 있습니다. ​ 저는 미리 인터넷을 통해 예약하고, 당일 방문자 센터에 방문했습니다. 문화의 날에는 예약없이 현장접수로 참여가 가능하다고 하니 참고하세요. 방문자 센터는 면사무소의 오른쪽 옆 건물 2층에 있습니다. 주변 곳곳에서 독립운동역사마을이라는 표식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 마을의 벽화에서 3.1운동 당시의 생생한 장면을 볼 수 있었고, 특히 면사무소에 걸려있는 ‘2일간의 해방, 독립운동 역사마을 양성면’이란 현수막이 눈에 띄었습니다.

[경기도민기자단]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 `안성 독립운동 역사마을` 스탬프 투어  ⓒ 경기도블로그


센터 안에서 만세운동에 관련된 여러가지 자료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예약한 사람들은 이곳에 집결하여 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 역사마을투어를 떠나게 됩니다. ​ 첫 번째 방문한 곳은 바로 면사무소 앞에 있는 독립광장이었습니다. 독립광장은 독립운동에 헌신하신 독립운동가를 추모하기 위해 조성된 공간인데요. 그날의 함성, 역사의 발자취 따라 걷기 독립광장에서 만세운동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자세하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 안성에서는 3월 11일, 양성면 양성공립보통학교에서 학생 주도로 첫 만세시위가 일어났습니다. 이후 4월 1일 원곡면사무소에서 집결한 1천여 명의 주민들이 태극기와 횃불을 들고 만세고개를 넘어와 양성면의 1천여 명의 주민들과 합류해 대규모 만세시위를 벌이면서 실력항쟁을 하게 되었는데요. 그 과정에서 원곡, 양성면은 2일 동안 완전한 해방구역이 되었습니다. 설명을 들으면서 당시 2천여 명의 주민이 어떤 길로 행진을 했는지 답습하며 걸었습니다. 그 첫 번째 목적지가 바로 양성중학교 옆에 있던 주재소(터)였습니다. 지금은 터만 남겨져 있었는데요.그때 일본 순사들이 근무하던 주재소는 일제강점기 당시 주민들이 가장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던 곳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만세를 부르던 주민들이 제일 먼저 주재소를 파괴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은 처음 만세시위가 일어났던 양성보통학교로 갔는데요. 그 당시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던 양성면 출신의 고원근, 남진우 학생이 처음으로 만세시위를 주도했던 장소라고 합니다. ​ 방문한 날엔 코로나로 인해 학생들이 많이 보이진 않았지만 역사적인 장소답게 아직도 양성면의 정신적인 중심지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다음으로 간 곳은 양성면사무소 터입니다. 주민들을 지배하기 위해 설치한 행정기관으로 만세운동 주민들의 아픔과 분노를 샀던 곳이었습니다. 만세운동 당시 주민들은 건물과 집기, 서류에 불을 지르고 격렬하게 항쟁을 했다고 합니다. 주재소 이후 두 번째로 파괴된 곳이 양성우편소였습니다. 시위대가 이곳으로 간 이유는 전화선을 끊어서 외부와의 통신을 차단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지금과 같은 인터넷 세상이 아니었으니 전화선이 끊어진 후 연락이 쉽지 않았고, 그 덕분에 짧았지만 2일간 안성은 해방의 공간이 되었던 것이죠.

[경기도민기자단]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 `안성 독립운동 역사마을` 스탬프 투어  ⓒ 경기도블로그


다음으로 고리대금업을 하던 일본인의 집 융수지를 방문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가옥과는 달리 그때에도 일본인의 집엔 목욕탕, 화장실 등이 건물 안에 갖춰져 있을 정도로 아주 부유했던 집이었다고 합니다. 고리대금업을 했으니 주민들이 이 집에 가졌을 원망과 한이 얼마나 컸을지 예상이 됩니다.

[경기도민기자단]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 `안성 독립운동 역사마을` 스탬프 투어  ⓒ 경기도블로그


일본인들은 모여 살았던 융수지터 앞에는 일본인 외리여수가 운영하던 잡화상도 가까이 있었는데요. 만세운동 당시 가게가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외리여수는 이를 대가로 큰 손해배상액을 청구했습니다. 그 재판 기록이 그대로 남아있어 연대 피해 보상으로 생활고에 더 힘들었을 주민들의 아픔이 느껴졌습니다. 일본인 아야꼬가 운영하던 잡화상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인들의 집터나 가게터를 살펴보니 많은 일본인이 한국인들을 상대로 고리대금업, 잡화상 등을 운영했던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경기도민기자단]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 `안성 독립운동 역사마을` 스탬프 투어  ⓒ 경기도블로그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3·1독립 운동 항쟁지 기념비가 세워진 곳이었습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생을 받치신 분들의 헌신과 순국을 기억하기 위해 세워진 비입니다. ​ 원곡, 양성면의 만세운동으로 주동자들과 주민들이 재판을 받았고, 300여 명의 주민들이 체포되어 고초를 겪었다고 합니다. 그 후 여러 차례 재판을 통해 최대 12년형이라는 중형을 선고받았다고 합니다.

[경기도민기자단]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 `안성 독립운동 역사마을` 스탬프 투어  ⓒ 경기도블로그


안성 독립운동 역사마을의 관람 포인트는 만세운동 당시 주민들이 움직였던 동선을 따라 투어코스가 정해져 있어 생생한 현장울 그대로 느낄 수 있다는 점입니다.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여행하니 태극기를 흔들며 3.1 운동에 함께 참여한 것 같은 착각이 들었습니다.

[경기도민기자단]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 `안성 독립운동 역사마을` 스탬프 투어  ⓒ 경기도블로그


안성독립운동역사마을은 평화로운 농촌 풍경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마을인데요. 이곳에서 거대한 만세운동이 펼쳐졌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작은 마을이었지만, 그만큼 독립에 대한 마음이 강렬했기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처절했으나 찬란한 독립운동의 역사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안성독립역사마을! 여러분도 아이들과 함께, 가족과 함께 생생한 그날의 현장에 가보시는 건 어떨까요? ​ ​ 안성독립운동역사마을 위치: 독립운동 역사마을 방문자 센터 양성면 읍내길 21 이용 시간: 화~일 오전 10시~오후 4시 *매주 월요일 휴관 이용 문의: 031-678-2478

2021 경기도민기자단 최경숙 기자  ⓒ 경기도블로그


[출처:경기도블로그]
[작성자:2021 경기도민기자단 최경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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