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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시작이야…좋은 일이 생길거야”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5-06
`이제 시작이야`, `좋은 일이 생길거야`를 히트시킨 통기타 가수 한봉우 씨.  ⓒ 허선량 경기뉴스광장


■ 모든 날이 아팠다…어렸을 때부터 뭔가 기억이 날 때부터… 어린아이는 태어나보니 부모가 없었다. 부모의 이혼과 아버지의 재혼으로 누나 셋과 함께 할아버지 댁에서 얹혀 지내게 됐다. 어린 것들은 눈칫밥을 얻어먹으며 그렇게 지내야만 했다. 광명동굴 주변 공원 버스킹 무대에서 만난 한봉우(58)씨가 어린시절 이야기를 시작으로 보따리를 풀었다. “삼촌들과 지내는 일이 어린 제게 썩 유쾌한 일은 아니었어요. 차별이 늘 있었죠. 사춘기가 오면서 삼촌들과 다투는 일들이 자주 생겼어요. 분노 같은 것이 계속 쌓여만 가는 느낌이 들었어요. 답답했어요.” 머리가 커질수록 서울 아현동에서의 생활은 점점 힘들기만 했다. 위로 누나 셋이 있었는데 엄마가 데려가 버리고 그만 남게 됐다. ■ 외할아버지가 부셔버린 기타 4대…딴따라를 꿈꾸던 삼촌이 나의 롤모델 “나와 같이 살았던 삼촌 둘은 모두 인물이 좋았어요. 그 당시 어린 제가 봐도 키도 훤칠하고 잘 생겼던 걸로 기억해요. 비틀즈, 레드제플린과 딥퍼플 등 당대의 유명한 아티스트들의 음악이 늘 들려왔어요. 제 생활의 일부가 되면서 나도 모르게 그런 음악들을 스펀지처럼 흡수해갔어요.” 중 2때 신문을 돌리고 받은 1만2000원으로 기타를 네 개를 샀는데 할아버지가 다 부셔버렸다고 한다. 그때부터 예민한 사춘기 소년 한봉우는 자괴감과 끓어오르는 분노와 부모에 대한 원망등으로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다. “그 때부터 불량한 친구들과 사귀고 말썽을 부리기 시작했어요. 그러던 중 삼촌과 다툼이 생겼는데 할아버지가 나가라고 하시길래 물건을 다 부수고 집을 나왔어요. 그때가 17살이었어요. 비는 오고 친구집과 신문배달하는 곳을 왔다갔다하다가 아는 선배형이 운영하는 다방에서 장작패는 일을 하고 숙식을 해결했어요.” 그렇게 어린 나이에 힘들게 집을 나와 눈물어린 독립을 한 그는 이태원과 영등포 나이트클럽 DJ와 싱어를 하다가 수원 인계동과 미사리 등지에서 통기타 라이브를 하며 인생의 황금기를 맞이하게 됐다. “통기타 라이브가 한참 유행하다가 업소가 망했어요. 그래서 7080 야간업소에서 노래반주를 시작하며 돈을 좀 벌게 됐어요. 그런데 손님들과 다투는 일이 잦아져서 정말 비참한 기분으로 일을 하다가 2007년에 ‘이제 시작이야’하는 데뷔곡을 발표하여 마침내 유명해졌어요. 하늘을 나는 기분이라고 할까요. 정말 신났어요.”

그는 코로나 이후로 버스킹 무대에서 자신이 제작한 CD를 판 수익금을 전액 불우이웃을 위해 기부한다고 한다.  ⓒ 경기뉴스광장 허선량


■ ‘이제 시작이야’, ‘좋은 일이 생길거야’ 줄줄이 히트… 그러다가 갑자기 쓰러지다 야간무대의 반주와 라디오방송 순위권 전국 20위에 랭크되어 전국을 돌며 공연을 하고 수입도 꽤 되니 본격적으로 자신의 음악을 하고 싶은 마음이 솟구쳐 올랐다. “2008년에 수원 인계동에 라이브 업소를 열었어요. 그러면서 ‘sometimes’라는 팀을 후배와 조직하고 ‘좋은 일이 생길거야’를 만들어 연이어 히트를 쳤어요. SBS FM 이숙영 프로그램에서 3년동안 로고송으로 채택되기도 했어요. 온 세상이 모두 내 것 같았죠.” 그렇게 천년만년 인기와 명예를 누리며 승승장구할 것만 같았던 어느 날 그가 갑자기 쓰러졌다. “심근경색이었어요. 구급차를 부르며 울부짖는 아내의 모습을 희미한 의식 속에서 바라보는 것이 얼마나 제게 큰 고통이었는지.. 정말 이러다가 죽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 무리하게 투자한 녹음실과 앨범작업에 들어간 돈...그리고 해체된 ‘sometimes’팀과의 불화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을 겪다보니 장기간 스트레스로 인해 몸과 마음이 다 망가졌었나봐요. 살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어요...” ■ 내게 경기도는 노래를 하게 해준 치열한 삶의 현장 “경기도를 떠나서는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어요. 제게 노래가 전부이듯 그런 노래를 할 수 있게 해준 곳도 경기도고요. 푸근하고 익숙하니 떠나고 싶지 않아요. 여기서 노래하고 아내와 평생 지낼 생각이에요.” 비록 엄마와 재회하고 결혼 후 엄마랑 한집에서 살았지만 같이 산 적이 없어서 불편했다고 한다. 현재 잘 안 만난다고 하니 천륜도 같이 지낸 세월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란 생각이 든다고 했다. “코로나가 유행하기 시작하니 노래할 곳도 없고 살길이 막막해서 버스킹을 하기 시작했어요. 아내가 부었던 적금을 깨서 CD를 제작하여 버스킹 공연때 팔았어요. 이 이익금 전액은 ‘따뜻한 하루’라는 국제구호단체에 기부하고 있어요.” 벌이도 빠듯한데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느냐 물었다. “어디든 노래할 수 있는 곳이 있으면 달려가서 노래를 하고 싶어요. 불러주는 사람이 많아져서 맘껏 노래를 하고 싶은데 가만히만 있을 수는 없잖아요. 먼저 사람들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봉사도 하며 어려운 형편이지만 기부도 하며 지내고 있어요.” “노래는 제게 생명과도 같아요. 노래 없이는 살 수가 없어요. 작은 무대라도 맘껏 노래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지금 당장 갈 준비가 돼있어요.” 비록 온갖 명예와 고생으로 뒤섞인 그의 인생이지만 “이제 시작이야”라는 노래가 다시 그를 일으켜 세워 옛날의 영광을 재현할 그날을 손꼽아 기다려 본다.

`좋은 일이 생길거야`라는 노랫말 가사처럼 그의 인생 후반부에 신나는 일이 생기길 기대해본다.  ⓒ 경기뉴스광장 허선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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