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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민기자단] 독립운동의 거목! 민족 지도자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몽양여운형생가기념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7-06
[경기도민기자단] 독립운동의 거목! 민족 지도자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몽양여운형생가기념관  ⓒ 경기도블로그


[이난희 기자]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신원리에는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과 평화통일을 위해 일생을 바친 민족의 큰 스승이자 지도자였던 몽양 여운형 선생을 기리고자 세운 `몽양여운형기념관`이 있습니다. 기념관은 2011년 11월에 몽양 여운형 선생의 생가 복원과 함께 건립되었는데요. 몽양 여운형 선생의 삶과 사상을 자세히 알아보고자 경기도 양평에 다녀왔습니다.

[경기도민기자단] 독립운동의 거목! 민족 지도자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몽양여운형생가기념관  ⓒ 경기도블로그


중앙선 신원역에 내리니 담벼락에 기념관 가는 길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血膿於水 (혈농어수)” 라고 한자가 쓰여 있는데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뜻으로 여운형 선생이 일본의 고마 신사 방명록에 남긴 친필입니다. 이 글에서 왠지 선생의 삶과 민족정신이 느껴지는 듯합니다. ​

[경기도민기자단] 독립운동의 거목! 민족 지도자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몽양여운형생가기념관  ⓒ 경기도블로그


기념관으로 올라가는 길은 살짝 오르막길입니다. 오르막길을 천천히 오르다보면 ‘묘골애오와공원’이 보입니다. 이 공원은 몽양 선생을 기리는 곳으로 묘골은 그 당시 지명이고 애오와는 ‘나의 사랑하는 집’이라는 뜻입니다. ​

[경기도민기자단] 독립운동의 거목! 민족 지도자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몽양여운형생가기념관  ⓒ 경기도블로그


더 올라가니 `몽양 어록길`이라 하여 선생의 어록을 새긴 돌이 기념관 가는 양쪽 길에 나란히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중 1945년 해방 후 첫 연설 글로 쓰여진 `이제 우리 민족은 새 역사의 첫발을 내딛게 됐다. 우리는 지난날의 아프고 쓰라린 것들은 이 자리에서 잊어버리고 이 땅에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낙원을 건설하여야 한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감격스럽고 희망찬 의지가 돋보이는 선생의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경기도민기자단] 독립운동의 거목! 민족 지도자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몽양여운형생가기념관  ⓒ 경기도블로그


어록길 끝 모퉁이를 지나니 몽양기념관과 생가의 모습이 보입니다. 생가는 6.25 전쟁 때 소실됐다가 2008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등급)이 추서된 것을 계기로 서거 64년에 복원됐습니다. 기념관 전시실에는 서거 당시 입고 있던 혈의(등록문화재)와 장례식 만장을 비롯한 유물들과 선생의 유년 시절부터 광동학교 설립, 국채보상운동, 노비해방 및 기독교 활동 등 시대의 흔적이 시기별로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

[경기도민기자단] 독립운동의 거목! 민족 지도자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몽양여운형생가기념관  ⓒ 경기도블로그


경기도 양평 출신의 여운형 선생은 독립운동가이자 언론인이며 정치가였습니다. 몽양 선생의 친족들은 동학의 핵심교도였기에 어렸을 때부터 동학사상을 접하며 민족자주의 평등한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여운형 선생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교육기관인 배재학당에 입학해 서양문물과 애국계몽운동을 접했습니다. 선생은 1905년 을사늑약에 항거하며 민영환 선생이 자결했을 때, 1907년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났을 때, 국민들의 각성을 호소했습니다.

[경기도민기자단] 독립운동의 거목! 민족 지도자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몽양여운형생가기념관  ⓒ 경기도블로그


그 결과 1919년 2월 만주 지린성의 대한독립선언, 2월 8일 도쿄 유학생들의 독립선언 그리고 마침내 3월 1일 기미 독립선언과 만세운동이 몽양 선생과 동지들의 노력으로 펼쳐졌습니다. 몽양 여운형 선생의 둘째 아들과 친구 사이였던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 올림픽에 나가는 것을 고민하며 상담을 요청했을 때, 선생은 가슴에 일장기를 달고 나가는 것은 원통하지만 나가서 조선 민족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보여줘야 한다고 당부했다고 합니다. 결국 손기정 선수는 그 당부대로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해 세계를 제패했습니다. 당시 조선중앙일보 사장이자 조선체육회의 회장이었던 여운형 선생은 조선일보 호외를 발행해 손기정 선수 가슴의 일장기를 지워 최초로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이 일을 계기로 조선중앙일보는 폐간되고 말았습니다. 광복 이후, 여운형 선생은 정치가로서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결성하여 위원장으로 활동했습니다. 미 군정이 이를 인정하지 않자 미 군정의 한반도 문제 개입을 반대하고 우리 민족이 자력으로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내용이 자세히 적혀 있는 전시실을 둘러보다 보니 기념관 중앙에 책을 보고 있는 선생과 함께 사진 찍을 수 있는 동상이 있었습니다. 가만히 선생 곁에 앉아 선생의 삶과 사상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3.1운동 발단의 중심, 민족의 웅변가, 옥중생활, 외교 활동을 통한 독립운동 및 조선중앙일보 사장 시설 등 의지가 강한 선생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기념관에는 여운형 선생과 합성 사진을 찍을 있는 크로마키 촬영실도 있었습니다.

[경기도민기자단] 독립운동의 거목! 민족 지도자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몽양여운형생가기념관  ⓒ 경기도블로그


전시 관람을 끝내고 2층으로 올라가 선생의 생가에도 들렀습니다. 기와집으로 지어진 외관과 함께 기념비도 볼 수 있었습니다. 생가 안은 너른 마당과 농기구 보관 창고, 바깥마당의 가축을 기르는 곳도 볼 수 있었습니다. 툇마루에 앉아 면도하는 선생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인형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시대를 앞서간 민족 지도자이자 대한민국 건국의 뿌리인 여운형 선생의 숭고한 삶을 기억해 보았습니다.

[경기도민기자단] 독립운동의 거목! 민족 지도자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몽양여운형생가기념관  ⓒ 경기도블로그


몽양 여운형 선생은 현재 남북한에서 동시에 존경받는 거의 유일한 정치 지도자라고 합니다. 이번 주말에는 수도권에서도 전철로 쉽게 방문해 볼 수 있는 몽양여운형기념관과 생가를 방문해 여운형 선생의 삶과 사상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몽양여운형생가기념관 위치: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몽양길66 이용 시간: 하절기(3~10월)오전 9시 30분~오후 6시 / 동절기(11월~2월) 오전 9시 30분~오후 5시 * 월요일 휴무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다음날 휴관) / (1월 1일, 설날, 추석 휴관) 이용 문의: ☎031-775-5600

[경기도민기자단] 독립운동의 거목! 민족 지도자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몽양여운형생가기념관  ⓒ 경기도블로그


[출처:경기도블로그]
[작성자:2021 경기도민기자단 이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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