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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민기자단] 광복절 76주년! 문학에서 광복의 의미를 되새겨 보다. 박두진문학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8-18
[경기도민기자단] 광복절 76주년! 문학에서 광복의 의미를 되새겨 보다. 박두진문학관  ⓒ 경기도블로그


[윤일만 기자] 2021년 8월 15일 광복절 76주년을 맞이하여 의미있는 장소, 경기도 안성의 박두진문학관과 박두진문학길을 소개하겠습니다. 일제강점기부터 60년 동안 20여 권의 시집을 펴내며 1,000여 편의 시와 400편이 넘는 산문을 발표했던 박두진은 1916년 3월 10일 안성에서 태어나 고장치기로 불리던 안성시 보개면 동신리에서 18세까지 이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안성공립보통학교 시절, 글짓기 발표로 당시 국어선생인 권형식으로 부터 글 쓰는 소질이 남다르다는 칭찬을 받고 장래 시인으로서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청룡산(서운산)을 넘는 강렬한 햇빛과 고장치기의 짙푸른 하늘, 모래사장의 거센 바람이 어우러진 안성의 자연환경은 훗날 박두진 시의 중요한 소재가 되었습니다. 항일저항을 자연에 은유한 시를 창작하며 저항의식을 드높였습니다. 특히 1939년부터 1945년에는 문학의 암흑기로써 주류문학은 일본어로 쓴 친일문학이 대부분이었지만, 일제의 탄압을 피해 숨어서 한글로 시를 창작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행위는 당시로서 반국가적 행위였음에도 불구하고 일제의 강력한 정책에 순응하지 않았다는것을 알수 있습니다. 광복 후에는 한일 국교정상화에 반대하는 1호 시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저항의 정신적 배경이 된 안성의 박두진문학관과 문학길을 돌아보며 76주년 광복절을 맞이하여 광복의 의미를 되새기고자 합니다. 광복의 의미를 돌아보는 박두진문학관

[경기도민기자단] 광복절 76주년! 문학에서 광복의 의미를 되새겨 보다. 박두진문학관  ⓒ 경기도블로그


2018년 11월에 문을 연 박두진문학관은 박두진 시인이 묻힌 기좌리와 안성의 진산인 비봉산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안성맞춤랜드 북쪽 끝자락에 건립되었습니다. 박두진 문학과는 3개 층으로서 1층은 북 카페와 수장고가 있으며 2층은 박두진 시인의 삶과 문학적 발자취를 돌아볼 수 있는 전시공간, 3층은 전망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2층에 있는 전시공간이 메인이며 공간 구성으로는 박두진의 문학적 노정과 박두진이 펴낸 시집을 한 눈에 살펴 볼 수 있는 1부 ‘박두진의 시를 읽다’ 박두진의 일상생활과 관련된 자료를 전시하고 서재를 재현한 2부 ‘박두진의 일상을 보다’. 수석 수집, 글씨, 그림 등 다양한 예술분야에서 활동한 박두진의 작품과 예술을 대하는 마음을 감상할 수 있도록 준비한 3부 ‘박두진의 예술세계와 만나다’ 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경기도민기자단] 광복절 76주년! 문학에서 광복의 의미를 되새겨 보다. 박두진문학관  ⓒ 경기도블로그


박두진문학관의 안영미 해설사께서 박두진 시인을 이해하기 쉽도록 깊이 있게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해설사의 경우 보통 1년 단위로 순환 보직 이동이 있다고 들었는데 다른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안영미 해설사는 이례적으로 개관이래 지속적으로 이곳에서 근무하고 계셨습니다. 1시간이 넘게 설명 내용을 들으면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박두진 시인과 관련된 매우 높은 전문적 지식과 열정적인 모습으로 설명해주셨습니다. 1부 ‘박두진의 시를 읽다’ ​박두진은 정지용의 추천으로 시 <향현/香峴>과 <묘지송/墓地頌>이 문예잡지 『문장』 1939년 6월호에 실리면서 시인으로서의 꿈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문장』은 일제의 민족말살 정책이 한창이던 1939년 2월 창간되어 1941년 2월 일제의 강압에 의해 폐간될 때까지 총 26권이 간행된 월간 문예잡지로서 순수문학을 지향하는 동시에 전통과 고전의 강조를 통해 일제강점기 민족정신을 고취한 시집입니다.

[경기도민기자단] 광복절 76주년! 문학에서 광복의 의미를 되새겨 보다. 박두진문학관  ⓒ 경기도블로그


안영미 해설사의 설명에 따르면 시 <향현/香峴>은 지금의 은평구에 있는 지명으로 추측이 되는 바, 조선시대 임금이 이 고개를 지나 행차 할 때 백성들이 손에 향을 들고 나와 임금을 배웅한 곳으로서 박두진 시인이 전달하고자 했던 전통과 고전의 정신을 은유한 시 입니다. 시 <묘지송/墓地頌>은 죽음의 표정을 그리고 있지만 어느 구석에도 음산함이나 허망함이 없으며 죽음에 대한 예찬도 없습니다. 시인은 밝음보다는 오히려 어둠속에서 구원의 희망이 넘칠 수 있음을 강조함으로서 일제에 저항하는 의미를 은유했습니다. 박두진 시인은 청록파 시인 중 조지훈 시인은 직접적인 글로써 일제에 저항을 하여, 감옥에도 몇 번 다녀온데 반해 박두진 시인은 자연을 은유로 하여 간접적인 저항을 하였기에 실체적 저항운동으로 탄압받았다는 기록은 없다고 합니다. 시집 『해』는 1949년 5월에 발간하였으나 그 안에 실린 대표적인 시 <해>는 이미 일제강점기 시기에 작성되어 광복 후에 발간되었습니다. 어둠, 달밤 등으로 표현된 일제강점기 후반의 암울한 민족적 현실을 빛의 속성을 지닌 해라는 생명력을 통해 표현하였고, 참고로 <해>는 가수 조하문씨가 곡으로 노랫말을 붙여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이렇듯이 청록파로 불리는 박두진, 박목월, 조지훈은 모두 자연을 가장 중요한 소재로 택한 공통점이 있지만, 박목월이나 조지훈의 자연과 박두진의 그것은 차원이나 어조가 매우 다릅니다. 박목월과 조지훈이 정적이고 유유자적한 자연을 노래했다면, 박두진은 자신의 정신과 이상을 구현하는 매개체로 자연을 형상화했습니다. 박두진 시의 중요한 속성 가운데 하나가 준열한 역사의식에 있음을 알려줍니다. 시인은 직접적인 항일저항운동을 펼침이 아닌 고향인 안성의 자연적 정서를 은유로 하여 일제에 저항운동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2부 ‘박두진의 일상을 보다’

[경기도민기자단] 광복절 76주년! 문학에서 광복의 의미를 되새겨 보다. 박두진문학관  ⓒ 경기도블로그


박두진 시인의 일상생활은 글쓰기에 맞춰져 있었지만, 글쓰기 뿐만 아니라 독서, 학교강의와 수석 채집등을 하고 다녔습니다. 유년시절에는 안성장터에서 맹인이 퉁소를 연주하는 것을 본 뒤부터 관악기에 관심이 생겨 단소를 배웠다고 합니다. 학교 강의가 끝난후 피곤하거나 일이 손에 안잡힐때는 고서점이나 골동품 가게를 찾아 고가구나 도자기를 수집하며 옛 선비들의 이상과 예술정신을 가슴에 담았습니다. 박두진 시인은 이렇게 수집한 도자기에 직접 먹 글씨를 쓰는 것을 즐겼다고 합니다. 연필과 볼펜으로 문자를 기록하는 것이 일상이 된 오늘날, 정성스럽게 간 먹과 붓으로 기록한 글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겸손한 마음가짐을 가지게 되는 지침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한 보통 다른 시인들처럼 술을 전혀 입에 대지 않았기에 건강한 생활을 유지할수 있었습니다. 이해인 수녀의 편지와 마광수 교수의 편지 속에서도 그의 인품을 찾아 볼 수 있었습니다. 3부 ‘박두진의 예술세계와 만나다’

[경기도민기자단] 광복절 76주년! 문학에서 광복의 의미를 되새겨 보다. 박두진문학관  ⓒ 경기도블로그


박두진은 시, 수필, 평론과 같은 문학 분야에 한정하지 않고 글씨, 그림, 조각, 수석 수집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활동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예술작품을 만들고 즐겼던 박두진은 장식적 기능이나 실용에 치우치지 않고 예술과 생활의 조화와 질서를 바탕으로 살아왔습니다. 고향인 안성에서 살때 산을 오르는것이 특기였기에 서울에서 생활할때에도 산에 자주 오르곤 했습니다. 문학적 소재를 비롯하여 표현하고자 하는 예술의 근원과 이상을 대부분 산과 같은 자연에서 구했습니다. 수석 수집에 관심이 많았던 이유도 어렸을적 산과 들, 강에 수석이 널려있었기 때문이며, 서도를 통해 이상적인 삶을 궁구했던 것도 변하지 않는 자연 앞에서 스스로를 경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박두진은 시를 쓰거나 수석을 만지거나 먹 글씨를 쓰는 것이 자신에게 가장 적극적인 것이며 모두 하나의 근원인 예술세계이자 인생이라고 여겼습니다. 시와 서화를 즐겼던 옛 선비들이 문방이라는 공간 아래서 더욱 빛을 발했듯이, 여기에서 소개하는 수석과 수석 시편, 유묵과 서화 용구는 시인에 머물지 않고 예술가로서 다양한 작품을 남긴 박두진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고향땅 안성을 유별히 사랑했던 시인의 글을 보며 문학관 관람을 마쳤습니다. “누구나 그리운 것이 고향이겠지만, 나는 좀 유별났다. 아무 때나 무뚝무뚝 생각나고, 어릴 때의 고향 모습을 지금도 나는 꿈속에서 자주 본다. 나의 고향은 경기도 안성이지만, 그러나 가장 고향다운 고향은 안성의 한 촌락인 ‘고장치기’라는 곳이다... 여덟 살부터 열여덟 살까지의 가장 다감하던 소년시절을 이 고장치기에서 살았다. 가장 여리고 순수하던 인생 중의 알고갱이 시절을 여기서 살았으니 고장치기야말로 나의 고향 중의 고향인 셈이다...” 시인의 자취를 밟다, 박두진문학길

[경기도민기자단] 광복절 76주년! 문학에서 광복의 의미를 되새겨 보다. 박두진문학관  ⓒ 경기도블로그


박두진문학관 관람을 마치고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박두진문학길을 둘러봤습니다. 금광호수변에 자리하고 있는 박두진문학길은 박두진 시인의 집필실(쉼터)이 있던 장소였기에 박두진 문학길이라 이름붙이고 수변 산책길로 조성하게 되었습니다. 집필실(쉼터)이 있는 자리는 쉬며 갈 수 있는 자그마한 공원 형태로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차로 호수 끝자락에 조성되어 있는 문학길로 이동했습니다. 문학길 입구에는 넓은 주차장 시설이 잘 갖춰져 있었으며 박두진 시인의 좌상과 시비가 조성되어져 있어 문학길임을 안내하고 있었습니다. 방문 당일에는 폭염주의보가 발령으로 인해 조금만 걸어도 땀이 비오듯 쏟아졌습니다. 걷다보니 호수변 숲길의 문학길 곳곳의 시인의 여러 작품들이 나무에 조각되어 걸려있었고 하나씩 읽어보며 열을 식힐수 있었습니다.

[경기도민기자단] 광복절 76주년! 문학에서 광복의 의미를 되새겨 보다. 박두진문학관  ⓒ 경기도블로그


문학길에는 박두진 둘레길이 만들어져 있는데요. 왕복 1시간 정도 되는 거리로서 박두진문학관을 들린후 조용히 사색하며 즐겨보는것도 좋을것 같습니다. 항일저항을 자연에 녹여낸 시인, 박두진 시인을 기리며

[경기도민기자단] 광복절 76주년! 문학에서 광복의 의미를 되새겨 보다. 박두진문학관  ⓒ 경기도블로그


박두진 시인은 1998년 9월 16일 향년 83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3개의 테마로 이루어진 박두진문학관 전시공간을 둘러보며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 시절에는 젊음의 뜨거운 피로 저항하고 광복 후에는 한, 일 국교정상화에 반대하는 1호 시인으로서 그 뜨거운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그 후에는 대학에서 후배들에게 문학을 가르쳐 많은 작가들이 배출되었기에 한국 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발자취를 인정받아 안성에 이렇게 훌륭한 문학관이 건립하게 되었습니다. 광복절을 맞이하여 박두진문학관에서 시인의 일생을 돌아보며 광복의 큰 의미를 음미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8월15일 빛의 되찾은 광복절! 광복의 의미를 새기는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경기도민기자단] 광복절 76주년! 문학에서 광복의 의미를 되새겨 보다. 박두진문학관  ⓒ 경기도블로그


[출처:경기도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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