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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군 첫 전투, 스미스부대의 숭고한 희생 영원히 기억할 것”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8-07-06
김진흥 경기도 행정2부지사가 6일 오전 10시 오산 죽미령에서 열린 ‘UN초전기념 및 스미스부대 전몰장병 추도식’에 참석해 추도사를 전하고 있다. “이 땅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고귀한 목숨을 희생한 스미스부대 장병들과 모든 UN 참전용사들의 명복을 빕니다.” 6일 오전 10시 오산 죽미령에서 열린 ‘UN초전기념 및 스미스부대 전몰장병 추도식’ 현장. 이곳에서 김진흥 경기도 행정2부지사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추도사를 대신 전하며, 대한민국이라는 낯선 땅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희생한 UN군 참전용사들의 넋을 기렸다. 이날 추도식은 68년 전 6‧25전쟁 발발 후 UN군 이름으로 북한군과 첫 교전을 벌이다 큰 희생을 치른 미24사단 스미스 특수부대원을 추모하기 위해 마련됐다. 행사에는 김진흥 경기도 행정2부지사와 곽상욱 오산시장, 김광우 국가보훈처 제대군인국장, 안민석 국회의원 등 내빈을 비롯해 앤드류 즉넬리스 미8군 작전참모장, 김인건 육군 5067부대 사단장 등 군 장성, 스미스부대 참전용사와 유가족, 보훈단체장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추도식에 참석한 미군 관계자들이 전몰장병들의 넋을 기리며 묵념을 하고 있다. 헌화하는 김진흥 행정2부지사의 모습. 이 자리에서 김광우 국가보훈처 제대군인국장은 추도사를 통해 “68년 전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스미스부대가 오산 죽미령에 최초로 투입됐다”며 “UN군 창설 후 첫 전투가 벌어진 이곳에서 미국의 젊은 군인 180여 명이 전사하거나 실종됐다”고 밝혔다. 이어 “이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현재의 대한민국 역시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는 것이야말로 UN군이 보여준 우정과 희생에 대한 최대한의 보답이라 생각한다. 스미스부대원의 희생을 결코 잊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김진흥 행정2부지사도 “68년 전 스미스부대 장병들과 UN참전용사들의 헌신은 이 땅에 평화의 씨앗을 뿌렸다”며 “평화보다 강한 안보는 없다. 이들의 고귀하고 경건한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경기도가 앞장서 한반도 전역에 평화의 싹을 틔우겠다”고 이재명 지사의 추도사를 대신 전했다. 곽상욱 오산시장은 “오산시 죽미령은 최초의 UN접전지로 대한민국 현대사에 매우 중요한 곳”이라며 “현재 UN군 초전기념관과 연계해 조성 중인 UN군 초전기념 평화공원 사업이 스미스 특수부대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고 세계 평화와 자유 수호의 상징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오산시는 6.25전쟁에서 첫 교전을 치른 스미스 부대원을 추모하기 위한 ‘UN초전기념 평화공원’ 조성사업을 추진 중이다. 추도식 후 장소를 이동한 참석자들은 오산시 미래사업과 유창현 주무관으로부터 ‘UN초전기념 평화공원’ 관련 사업 현황을 보고받았다. UN초전기념 평화공원은 2019년 7월 준공을 목표로 오는 8월 착공 예정으로 ▲알로하 평화관(VR 체험형 전시관) ▲기억의 숲 ▲평화마당 ▲즐거움의 언덕으로 구성된다. 총사업비는 182억 원으로, 이 중 도비는 50억 원이 투입된다. 유 주무관은 “기억의 숲 정상에는 디오라마 전망대를 설치했다”며 “68년 전 스미스부대원들이 초전 당시 북한군을 정찰했던 것처럼, 이곳에 올라 동탄권역과 오산 시내를 내려다보면 왜 이곳이 전쟁의 요충지였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미스부대 참전용사로서 이날 추도식에 함께한 월리엄 코어(William Coe) 씨는 “뜻깊은 행사에 참여할 수 있어서 굉장히 기쁘고 마음이 벅차다”며 “다음에도 꼭 다시 한번 이곳을 찾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UN초전기념 및 스미스부대 전몰장병 추도식’에 참석한 내빈들이 UN군 초전기념관을 둘러보고 있다. 한편, 스미스 특수임무부대는 미 24사단 소속으로 6.25전쟁 당시 UN군 파병 결정에 따라 최초로 파견된 부대다. 이후 1950년 7월 5일 오산 죽미령에서 북한군과 최초의 교전을 치렀고, 스미스부대원 540명은 6시간 15분의 치열한 전투 끝에 퇴각했다. 이 전투로 스미스부대원 540명 중 150명이 사망하고, 31명이 실종됐다. 처참하게 패했지만 죽미령 전투는 승패를 떠나 우리 군이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게 해줬고, 그 결과 전세를 뒤집는 초석이 됐다. 또 이를 통해 국제사회에 한국전쟁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켰다. 이 전투를 통해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하고 재정비를 마친 국군과 유엔군은 이후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전세를 역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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