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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19-중국편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11-18
경기도 중학생 역사원정대는 출국하기 전 역사에 대한 포부를 다짐하며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 경기도 중학생 역사원정대


“역사는 항상 새롭게 다시 쓰이며, 따라서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이다.” 용인지역 중학교 2학년 학생들과 경기도 청소년기자단이 함께한 ‘응답하라 1919 경기도 중학생 역사원정대’는 지난 10월 22일부터 25일까지 4일간의 역사 시간여행을 위해 중국으로 떠났다. 경기도는 2019년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청소년들이 자주독립과 항일투쟁의 역사를 느끼고 배울 수 있는 체험학습의 기회를 마련하고자 이번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도내 31개 시군에서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을 선발해 역사원정대를 구성했다. 선정된 중학교 2학년 학생들에게는 중국 또는 러시아를 방문할 기회가 주어졌다. 기자는 용인시에서 선발된 학생들과 함께 중국의 상해, 가흥, 항저우 지역의 항일·독립운동 거점을 취재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의 역사로 남게 된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그리고 그 시대를 느끼기 위해 떠난 ‘응답하라 1919 경기도 중학생 역사원정대’. 역사원정대는 새롭게 쓰일 현재 우리의 역사를 중국에 남기고 왔다. 용인지역 학생들과 경기도 청소년기자단이 함께한 역사원정대가 중국에 남기고 온 역사는? 원정대가 방문한 나라 중국은 5000년이 넘는 역사 속에 거쳐 간 수많은 나라가 살아 숨 쉬는 곳이자 만리장성 등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문화재들로 유명한 곳이다. 학생들은 3박 4일 동안 100년 전 유적지를 탐방하며 4일간의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중국에서의 역사여행 중 중요하게 선정된 지역은 상해 임시정부청사와 루쉰 공원, 만국공묘와 위안부 박물관, 재청별장이었다.

중국 상해에 위치한 12번째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외관 모습.   ⓒ 양나래 기자


상해 임시정부청사는 첫째 날 방문한 곳으로 일본의 탄압에 대항하고 자주독립을 주창한 민족운동, 3·1운동이 이뤄낸 결과였다. 3·1운동 이후 한성정부, 블라디보스토크의 대한국민의회, 상해 임시정부 등이 조직됐는데 외교활동에 유리한 상해에 임시정부를 통합해 수립된 것이 최초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의 모습은 1919년 9월 상해에 설립되어 크고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지만 역사원정대가 이번에 방문했던 임시정부청사는 낡고 허름한 일반 건물에 불과했다. 원정대가 방문한 청사는 임시정부 수립 이후 건설된 12번째 청사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구성하는 독립운동가들이 심각한 재정문제 속에서도 국민의 항일 의식 고취를 위해 살리고자 했던 노력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라면 대부분의 사람이 최초의 청사만을 기억하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최초가 아닌 두 번째, 세 번째 그리고 그 이후의 청사들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어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임시정부의 유지를 위해 목숨 바쳐 독립운동했던 독립운동가들을 기려야 한다.

역사원정대는 루쉰 공원 내 매헌 윤봉길 기념관을 방문했다.   ⓒ 양나래 기자


상해 임시정부와 같은 날 방문한 루쉰 공원은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있었던 유적지이다. 1932년 4월, 일본 천황의 생일 축하식과 전승 기념식 행사 도중 윤봉길 의사는 무대 중앙의 사열대를 향해 수통형 폭탄을 던졌다. 많은 사람이 도시락 폭탄으로 알고 있지만 윤봉길 의사가 외적을 처단하고자 침략의 원수를 향해 외친 자주독립은 수통형 폭탄으로 전달됐다.

학생들은 기념관에서 윤봉길 의사를 추모하며 묵념했다.   ⓒ 경기도 중학생 역사원정대


그 후 윤봉길 의사는 일본 경찰에 의해 연행되어 25살의 나이로 순국할 당시에도 어린 두 아들에게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하여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잔 술을 부어놓아라”라는 유언을 남길 만큼 목숨이 다할 때까지 독립운동의 정신을 강조했다. 학생들은 루쉰 공원에 위치한 매헌 윤봉길 기념관에서 묵념하며 윤봉길 의사의 추모식을 가졌다.

만국공묘에는 14명의 우리나라 독립운동가들을 비롯해 많은 타 독립운동가들이 묻혀있다.   ⓒ 양나래 기자


만국공묘는 첫째 날 일정을 지나 둘째 날 탐방한 유적지로 14명의 우리나라 독립운동가들을 비롯한 수많은 타계 독립운동가들의 무덤과 기념비가 세워져 있는 곳이다. 역사원정대의 역사 교육을 담당한 우장문 박사는 만국공묘의 14명의 독립운동가 중 신규식 독립운동가와 김은식 독립운동가의 업적 강의와 함께 “이곳에는 무명의 독립운동가들이 많이 묻혀있는데 유명과 무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대한의 독립을 위해 나라에 목숨을 걸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라며 “이곳에 이름 석 자가 새겨져 있다는 것 자체로 존경심을 가져야 하며 이분들과 함께 희생한 수많은 이름 모를 독립운동가들을 늘 잊지 말아야 할 것”을 강조했다.

상해사범대 내에 위치한 위안부 박물관의 입구이다.   ⓒ 양나래 기자


상해사범대 내에 위치한 위안부 박물관은 일본에 의한 지배 정치 당시 중국·한국·타이완 등으로 강제 연행됐던 위안부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곳이다. 위안부란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일본 장병들을 위해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강제 동원한 여성들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위안부 박물관에서 진행되는 전시는 일본의 반성과 인정, 중국의 20만 위안부 피해자들과 세계의 40만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리기 위해 마련됐다. 박물관 내에는 수많은 증거 자료들과 증거품, 위안부 피해 여성들의 증언 기록들이 남아있다.

원정대는 위안부 박물관을 관람하며 일제강점기 당시 실시됐던 위안부 제도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 양나래 기자


이런 상황에서도 일본은 일말의 반성도 하지 않고 있으며, 현재 일본이 바라는 것은 시간이 흘러 중국과 한국 총 약 37명의 위안부 제도의 증인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을 본받아 국민에게 지난 일제강점기의 역사 교육을 집중적으로 실시해 일본에 대항할 수 있는 아는 힘을 키워야 한다.

재청별장 입구.   ⓒ 양나래 기자


셋째 날의 일정으로 방문한 재청별장에서 역사원정대는 김구 선생의 생애를 비롯한 사실들을 알게 됐다. 김구 선생은 독립운동가들의 지도자인 자신이 일본 경찰에게 붙잡히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뒤에서 독립운동을 지도하며 계속된 피난길에 올랐다. 재청별장은 김구가 김의한과 함께 자싱으로 피신했다가 좁혀오는 수사망에 주푸청의 임신한 며느리 주자루이의 도움을 받아 옮겨온 곳이다. 재청별장에서 김구는 한인과 중국 주민들로부터 도움을 받으며 반년 동안 생활했다. 기자는 김구 선생과 재청별장을 취재하며 일제강점기는 마라톤이라는 생각을 했다. 일제강점기, 그 당시로선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긴 마라톤이었다. 중간중간 독립운동가들의 완주를 방해하는 일제가 있었고, 독립운동가들의 선두에는 지도자, 김구 선생이 있었다. 35년간의 끝이 보이지 않는 마라톤에 도중에 경기를 포기하는 친일파들이 생겨났고, 계속해서 경기를 이어간 선수들, 독립운동가들은 장애물·체력·가족을 만날 수 없는 외로움 속에서도 조력자나 스태프와 같은 한인과 중국 인민들의 도움으로 긴 마라톤에서 완주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던 것이다. 마라톤에 참가한 모든 선수가 완주자로서 대한의 독립에 크게 기여했지만 그중에서도 선두에 서서 뒤처지는 선수들에게 힘을 준 김구 선생이 지녔을 무게와 책임감을 상상하자 말문이 막혔고 그런 김구 선생의 피난처인 재청별장에서 많은 것을 느꼈다.

원정대는 셋째 날 투숙한 호텔의 세미나실에서 활동 보고서를 작성·공유·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 양나래 기자


셋째 날까지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원정대는 호텔 내 세미나실에서 여러 가지 활동 보고서를 작성했다. 개인 활동 수기와 모둠 간의 활동 결과 보고서, 유적지를 방문하며 느낀 점을 모둠별로 공유하고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다. 세미나실에서 일정을 마무리했던 셋째 날이 지나고 마지막 날 오전 일과까지 마무리한 후 원정대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대표로 떠났던 ‘응답하라 1919 경기도 중학생 역사원정대’에서 다시 경기도의 학생으로 돌아가는 순간이 찾아왔다. 인솔 교사들과 학생들은 작별인사를 하며 마무리했다. 기자는 이번 중국 역사 탐방을 통해 기자의 이름인 나래에 처음으로 큰 나래를 달고 세상을 넓은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것 같아 뜻깊었다.

중국에서 방문한 유적지 중 기자가 가장 인상 깊었던 장소, 상해 임시정부청사에서 촬영한 기념사진.   ⓒ 경기도 중학생 역사원정대


3박 4일을 보내며 기자는 우리의 역사만큼은 우리가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에 역사는 많고 매일 새롭게 역사가 기록되는 만큼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의 역사를 알아가야 할 것이다. 김구 선생의 명언 중 이런 말이 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은 원치 않는다. (중략)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후략)” 대한민국이 35년간의 통치 생활에서 벗어난 것은 74년밖에 되지 않았다. 우리는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바친 수많은 목숨으로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며, 선조들의 높은 기상을 기리고 또 한 번의 주권 박탈로 그들의 얼굴에 먹칠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김구 선생의 명언을 받아들여 막강한 문화의 힘을 길러 외세의 침략을 막고 나라의 발전에 더욱 기여해야 할 것이다. “역사는 항상 새롭게 다시 쓰이며, 따라서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이다.”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기에 자랑스러운 매일을 살고 1919년에 응답할 수 있는 2019 경기도민이 되도록 노력하자. 응답하라,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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