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곡도서관 상주작가 지원사업
『마지막 주 수요일, 문학이 있는 날』 9월 마지막 주 수요일
이달의 주제 : 동시 『어린이 열람실에 할아버지 앉아 계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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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의 짧은 생각
비교적 오래전에 어린 날을 살아온 나에게 도서관은 마음 속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의 판타지였다. 멀고 아스라해서 상상하기도 어려운 공간이었다.
동화책 한 권 읽기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어쩌다 한권 손에 들어오면 읽고 또 읽었다. 여럿이 돌려 읽었다. 빌린 책은 슬쩍 돌려주지 않기도 했는데, 소심한 탓에 나는 빌려볼 줄도 몰랐다. 그런데 누가 빌려달라면 거절 할 줄도 몰랐다. 몇 권 안 되던 나의 동화책들이 오롯이 내 것으로 남아있지 않은 건 당연하다.
책이 내 것으로 남기 어려운 이유는 또 있었다. 많은 식구들 중 누군가 빌려왔는지 사왔는지 알 수 없는 두툼한 책 한권이 식구들 사이를 돌고 돌았던 적이 있다. 시집 간 고모도 와서 읽고 가고, 집에 있는 고모도, 나와 동생도 열심히 읽었다, 아마 할아버지랑 아버지도 읽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표지부터 한 장씩 한 장씩 사라지고 있었다. 종이가 귀했던 그 시절 뒤가 급할 때마다 한 장씩 희생물이 되었던 거다.
흔적이 없으니 이 글과 그 시간이 거짓이라 해도 어쩔 수는 없다. 소중한 동화책 한 권도 인간이 누릴 최소한의 체면 앞에선 제물이 되어야했던 그런 날들이었다. 그 시간이 판타지 공간처럼 아스라하다. 슬그머니 웃음이 나고, 그 볕 잘 드는 마루로 훌쩍 다녀오고도 싶다.
어린이 열람실에서 잠깐 눈을 붙인 그 분도 아마 잠깐 그런 날 어디쯤에서 개구쟁이 무리와 함께 있지 않았을까. 지금, 우리 곁에 도서관이 있고, 도서관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멋진 일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