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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경관과 전통미가 일품인 ‘반구정’에 가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1-06-28
공부하다 지치고 힘들 때, 다시 가고 싶은 여행지가 있을 것이다. 경기도 파주의 숨은 명소를 꼽으라고 하면, 방촌 황희 선생의 유적지 ‘반구정(伴鷗亭)’을 최고의 유적지로 꼽고 싶다. 지금부터 꿈기자와 함께 청백리 명재상 황희 선생의 발차취를 느낄 수 있는 일출의 명소. ‘반구정(伴鷗亭)’으로 떠나 보자. 꿈기자는 5월 19일 가족과 함께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에 있는 ‘반구정(伴鷗亭)’에 방문했다. 이곳 ‘반구정(伴鷗亭)’은 황희 선생이 관직에서 물러나 여생을 보냈던 곳이라는 걸 사전에 책을 통해 알았다. 황희 선생은 고려시대 우왕 때 과거에 합격한 이후 고려가 멸망하면서 고려사신으로 활동했고, 조선이 틀을 갖추자 다시 조선으로 들어와 관직을 받았다. 황희 선생은 태종으로부터 사랑을 받았고, 태종은 황희 선생을 좋은 인재라며 세종에게도 추천했다. ‘반구정(伴鷗亭)’은 경기도 파주의 최고 경치를 자랑하는 숨은 명소이다. ‘반구정’은 황희 선생이 관직에서 물러나 여생을 보낸, ‘갈매기와 벗 삼는 곳’이라는 뜻을 가진 임진강 기슭에 세워진 정자이다. 예전에는 서해 바다의 갈매기들도 이곳에 왔다고 한다.
황희 선생의 유적지 안내도   ⓒ 공다은 기자


청백리 황희(厖村 黃喜, 1363∼1452)선생은 고려 말에서 세종을 거쳐 문종 2년(1452) 90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세종 때는 최고 지위인 영의정을 지낸 인물이기도 하다. ‘반구정’은 낙하진과 가깝다고 해서 낙하정으로 불려지다가 황희 선생이 반구정으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이곳에는 후손들이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방촌영당(尨村影當), 임진강변에 있는 정자 반구정(伴寇亭)과 앙지대(仰止臺), 방촌기념관, 황희선생 동상 등이 있다. 맑은 날 반구정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북한 개성의 `송악산`도 보인다고 한다. 반구정은 1983년 9월 19일 문화재 자료 제 12호로 지정되었으며, 황희 선생의 업적을 엿볼수 있는 방촌기념관은 아쉽게도 코로나19로 인하여 들어갈 수 없었다. 황희 선생을 ‘청백리’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다. 황희는 태종 때 첫째 아들 양녕대군을 왕위에 올라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첫째 양녕대군은 왕의 자질이 부족해서 셋째 충녕대군이 왕위에 올랐다. 바로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세종대왕이다. 이 일로 인하여 황희 선생은 귀향을 갔고, 원칙을 굽히지 않은 황희 정승을 다시 부른 건 다름아닌 세종대왕이었다. ‘청백리’는 조선시대 이상적인 관료상으로 소신과 관용을 갖춘 인품의 명재상 즉, 황희 선생의 모습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꿈기자가 ‘반구정’에 방문했을 때 큐레이터가 황희 정승에 대한 일화를 많이 알려주었다.

황희 선생 영당 입구와 신문(神門)  ⓒ 공다은 기자


청정문(淸政門)은 신문(神門)을 셋으로 나눠 만든 신산문(神三門)으로, 신의 출입구와 사람의 출입구를 구분한다. 가운데 있는 신문(神門)은 신이 출입하는 곳으로 항상 닫아 둔다, 양쪽 문은 사람이 들어가는 인문(人門)으로, 동문(東門)으로 들어가 서문(西門)으로 나오도록 한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 반구정에서 신문(神門)에 대해 설명하는 큐레이터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설명이 끝난 후에는 공수 자세로 `문지방을 밟으면, 신이 노한다!`, `복이 달아난다`고 해서 밟지 않고 안쪽으로 들어섰다. 황희 선생 영당은 황희 선생의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함께한 가족 모두 공수 자세로 두 손을 모아 절을 하였다. 이곳은 황희 선생의 초상화를 직접 볼 수 있는데다 전통 문양과 목조 건물, 현판 등이 주변 자연환경과 어우러져 멋스러웠다. 세월의 흔적이 있는 한옥의 문양을 그대로 볼 수 있어서 더욱 편안한 느낌이었다.

황희 선생 영당에서 본 한국의 전통 문양  ⓒ 공다은 기자


‘반구정’은 6.25전쟁 때 불에 타 없어졌으나, 후손들이 1962년에 정면 3칸의 초익공양식의 맞배집으로 복원하였고, 영당 내부 중앙에 별도의 감실을 두고 선생의 영정을 모셨다. 황희 선생의 후손들이 부분적으로 복원해 오다가 1998년 유적지 정화 사업을 통해 새롭게 목조건물로 재탄생했다. 본래 ‘반구정’은 앙지대 자리에 있었다. 반구정을 옮기면서 원래 자리를 기념하기 위해 앙지대를 세웠고, 두 곳 모두 자연경관과 정자의 어우러짐이 예술이다.

왼쪽부터 첫 번째 두 번째 사진은 반구정(伴鷗亭)’, 마지막 사진은 앙지대  ⓒ 공다은 기자


시원한 바람을 맞고 있으니 공부로 인한 스트레스가 달아났다. 우리집 한 곳에 이런 정자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정자 안에 앉았을 때와 일어났을 때 바람의 세기와 느낌이 달랐다. 황희 선생의 고향인 개성과도 가깝다고 하니, 북쪽을 바라보며 ‘세상의 시름을 잊기에 이 작은 정자 하나면 족하다’라고 말했던 황희 선생의 겸손한 마음이 그대로 느껴지듯 했다. 문득, ‘황희 선생님은 80대 후반의 나이에 관직에서 물러나 이곳 ‘반구정(伴鷗亭)’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후회 없는 생을 마감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임진강변과 주변 자연경관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정자 두 곳은 파주의 명소이자 나중에 꼭 다시 오고 싶은 ‘최고의 장소’가 되었다.

‘반구정(伴鷗亭)’ 과 화석정(花石亭)의 거리 차이  ⓒ 네이버 지도 캡처


다음으로 반구정에서 차로 약 12분 거리인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에 있는 율곡 이이(李珥) 선생의 정자 화석정(花石亭,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1호)에 가보았다. `화석정`은 조선 중기 대학자 율곡이이 선생의 정자로, 제자들과 함께 시를 짓고 학문을 논했던 곳이다. 정자 내부에는 실제 이곳에서 이이 선생이 지은 시가 걸려 있다.

화석정(花石亭)과 주변환경. 아래 왼쪽 사진은 이이 선생이 8세 때 지은 시가 정자에 걸린 모습이다.  ⓒ 공다은 기자


화석정(花石亭) 역시 6.25전쟁 때 소실되어 다시 지은 곳이라고 하니 더 이상 우리 문화유산이 파괴되지 않도록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황희 선생의 묘(경기도 기념물 제34호)를 방문했다. 주변이 왕릉처럼 성곽으로 싸여져 있고, 봉분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황희 선생님의 봉분은 둘레가 34m, 높이가 4m로 봉분 앞에는 2단의 석축이 있다. 양쪽으로 뻗어 있는 석축은 마치 어디론가 가려고 하는 거북이의 두 발과 같았다.

황희 선생의 묘  ⓒ 공다은 기자


조선 시대 본붕과 다르게 사각형으로 옆에서 보면 각진 모양으로 만들어졌다. 황희 선생은 86세 부인이 사망하였고, 87세부터 3년 동안 반구정에서 남은 여생을 보내고 90세 사망했다. 3년 후 세상을 떠나 부인과 함께 합장된 곳이 이곳이다. 황희 선생의 묘 뒤편으로 가보니 거북이의 꼬리와 같은 형상이 있어 참~ 특이하다는 생각을 했다.

가족과 함께 반구정에 가다.  ⓒ 공다은 기자


하루 동안의 길고 긴 여행이었고, 생각보다 수원에서 먼 거리였지만, 가족과 함께 여행을 다닐 수 있는 지금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또한, 멋진 임진강과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만나 본 ‘반구정(伴鷗亭)’ 과 화석정(花石亭)은 기억에 오래오래 남을 것 같다. 답답한 온라인 학습에 지치고, 친구를 못 만나 가볍게 이야기 조차 나누지 못하는 지금, 경기도의 숨은 명소`반구정`과 `화석정`에서 임진강변을 바라보며 힘들고 혼란스럽던 마음을 달랜 옛 선조들의 마음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 이곳은 마치 ‘고민거리가 있으면 언제든지 놀러와`라고 말하는 듯한 시원한 바람이 항상 불고 있을 것 같다. ○ 지정종목 : 경기도 문화재자료 ○ 지정번호 : 반구정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2호)/ 방촌영당 (경기도 기념물 제29호) ○ 소재지 : 경기도 파주시 사목리 산 127 ○ 시대 : 조선 시대 ○ 종류/분류 : 누정 <관람료 안내> ○ 입장료: 대인 1,000원 / 소인 500원 / 매달 마지막 수요일은 무료 관람 ○ 하절기 (3~10월) 9~18시 ○ 동절기(11~2월) 9~17시 ○ 주차비 : 무료 ○ 입장 시간 : 퇴장 30분 전까지 ○ 휴무 : 매주 월요일 ○ 문의 : 031-954-2170​ [출처] 자연경관과 전통미가 일품인 ‘반구정’에 가다|작성자 경기도 어린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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