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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서 만나는 인문학] DMZ 피스 플랫폼, 캠프그리브스(Camp Greaves)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9-08-30
캠프그리브스는 한국전쟁 정전협정을 맺은 후 미군 부대가 주둔한 미군 기지로, 2004년 주한미군이 철수하면서 평화 안보 체험 시설로 재탄생했다. 분단과 좌절의 아픈 상흔을 딛고 안보•문화 공간으로 승화된 캠프그리브스에서 평화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자료 제공 캠프그리브스
  ⓒ 일러스트 조성흠


캠프그리브스에서는 나도 ‘태양의 후예’ 주한미군은 해방 이후 미군정시대부터 한반도에 주둔해왔다. 미군정시대에는 모스크바3상회의의 결과에 따라 남한 지역 군정을 실시했으며, 한국전쟁 시기에는 유엔의 이름으로 공산군을 격퇴하기 위해 주둔했고, 정전협정 이후부터 현재까지는 한반도 및 동북아의 안보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주둔하고 있다. 이렇게 오랜 세월 주한미군은 대한민국 역사와 안보 체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미군이 주둔하던 기지는 미국 영토로 간주하기 때문에 부대가 철수하거나 이전하면 우리나라에 반환해야 한다. 파주의 캠프그리브스도 그중 하나다. 비무장지대(DMZ) 남방한계선에서 불과 2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캠프그리브스는 한국전쟁 정전협정이 체결되고 사흘 뒤 만들어졌다. 캠프그리브스의 첫 주인은 1955년까지 주둔한 미 해병 제1사단. 한국전쟁 기간 중 인천상륙작전과 장진호 전투, 그리고 10만 명에 이르는 민간인의 피란을 도운 흥남부두철수작전 등에 혁혁한 공을 세운 사단이다. 정전협정 이후에는 약 104명의 해병으로 구성한 DMZ 지역 민정경찰 중대를 창설해 DMZ 지역 순찰•정찰 및 주요 인사 경호 업무와 함께 1954년까지 송환 거부 포로를 관리했다. 그 후 2004년까지 제24보병사단, 제1기병사단, 제2보병사단, 제9보병연대, 제506연대가 차례차례 주둔하며 북한의 도발로부터 서울 서북전선을 방어해온, 그야말로 최전방 부대이자 가장 오래된 미군 기지 중 한 곳이다. 캠프그리브스에 주둔한 부대 중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곳이 제506연대. 이 부대는 미국 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 속 주인공이자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주인공 라이언이 소속된 곳이다. 캠프그리브스는 한국 드라마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2016년에 방영돼 공전의 히트를 친 드라마 <태양의 후예> 우르크 기지 촬영을 이곳에서 했다. 송중기가 <태양의 후예>에서 미군과의 격투 장면을 통해 멋진 액션을 펼치던 정비소를 비롯해 장교 숙소, 생활관과 체육관 등 다양한 시설이 그대로 보존돼 있어 국내외 관광객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체코슬로바키아 중립국감독위원회가 찍은 종전 후 3년이 지난 즈음의 개성 전경.  ⓒ 사진 홍하얀




캠프그리브스에 주둔한 미군들.  ⓒ 사진 홍하얀




캠프그리브스에 주둔한 미군들.  ⓒ 사진 홍하얀


민간인 통제구역 내 최초의 유스호스텔 캠프그리브스는 2004년 미군 철수 이후 2007년 8월 한국 정부에 반환되었다. 반환된 뒤에도 민간인출입통제선(민통선) 안이라는 지리적 한계와 법적 문제 때문에 별다른 활용 방안을 찾기 어려웠다. 한국군과 정부는 군사 시설로 계속 사용할 계획이 있었으나 경기도와 파주시, 경기관광공사가 군과 정부를 설득해 민간인을 위한 평화 안보 체험 시설로 탈바꿈시켰다. 개•보수만 이루어졌을 뿐 탄약고와 행정동으로 사용하던 퀀셋(Quonset) 막사, 정비고, 장교 숙소, 생활관과 체육관 등 37개 동의 다양한 군 시설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어 근대 문화유산으로서 문화적 가치가 높았던 것. 캠프그리브스는 2013년에 장교 숙소를 리뉴얼한 DMZ체험관을 개관하면서 재생 공간으로 발돋움한 후 2016년부터 시작한 문화 예술 프로젝트를 통해 평화•안보 체험과 함께 역사, 문화, 예술이 집약된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장병이 임시로 사용하던 반원 모양의 퀀셋 막사와 부사관 숙소는 기획전시관과 다큐멘타관으로, 탄약고는 예술 작품 갤러리로, 체육관은 DMZ 국제다큐멘터리 영화제 개막식 등 특별 행사 개최장으로 탈바꿈했다. 캠프그리브스 초입에 있는 유스호스텔은 최대 24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민통선 내 유일한 숙박 시설이다. 군대 내무반을 연상시키는 숙소와 군대에서 사용하는 식판을 이용한 식사가 마치 군에 입대한 착각마저 들 정도다.

체코슬로바키아 중립국감독위원회가 찍은 개성 시장. 아이스크림 가게가 인상적이다.  ⓒ 사진 홍하얀




다큐멘타관에 재현해놓은 장교 숙소 내부.  ⓒ 사진 홍하얀


한국전쟁 직후 일상 모습이 생생하게 담긴 사진전 다큐멘타관에는 캠프그리브스 주둔 군대와 관련한 역사 자료, 장교 숙소 등을 재현해놓았고, 기획전시관에서는 NNSC(중립국감독위원회)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NNSC는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후 한국전쟁 휴전 상황을 감시할 목적으로 창설한 위원회로, 한국전쟁의 공식 종전 선언이 이뤄질 때까지 북측과 남측 관계를 통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NNSC는 스웨덴, 스위스,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로 구성되며, 현재 남측에만 스위스와 스웨덴 각각 5명씩 남아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폴란드와 체코슬로바키아는 본국으로 돌아갔다. 이 중 폴란드는 본국에서 NNSC 업무를 수행 중이다. 기획전시관 1관에서는 ‘체코슬로바키아 중립국 감독위원단이 본 북한’ 사진을 관람할 수 있다. 정전협정 체결 이후 체코슬로바키아 NNSC에서 보낸 파견단이 미션을 수행하며 1953년부터 1956년까지 북한을 촬영한 사진들이다. 특히 그네를 타고 노는 개성 지역 아이들,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여인들 모습 등 전쟁 직후 일상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긴 사진이 인상적이다. 2관에서는 ‘폴란드로 간 북한 전쟁고아들’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1951년 폴란드로 보내진 1500여 명의 북한 전쟁고아의 모습을 담은 사진으로, 이들은 당시 최고의 의사, 선생님, 보모 등이 양육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1959년 북한의 송환 요청이 있을 때까지 폴란드는 사명감으로 북한 고아들을 돌봤다고 한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 촬영지. 이곳에선 다양한 체험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 사진 홍하얀




체코슬로바키아 중립국감독위원회가 찍은, 폴란드로 간 북한 전쟁고아들 모습.  ⓒ 사진 홍하얀


전쟁과 분단의 장소에서 평화와 통일의 공간으로! 캠프그리브스에서는 민통선 안이라는 특이점을 이용한 독특한 안보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당일 또는 1박 2일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다양한 참여자의 입맛을 충족시키기 위해 안보 OX 게임, 통일을 기원하며 미니 장승이나 솟대 만들기, 특급 전사 선발, 캠프 놀이마당, 도전 DMZ 골든벨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남북회담을 기점으로 DMZ에 대한 국내외 관심이 고조되는 가운데, 과거 전망대와 땅굴 등 안보 관광 위주이던 DMZ 일원이 새로운 역사와 문화•예술•생태 환경 프로그램 등을 중심으로 변화하는 추세다. 버려진 군사시설에 콘텐츠가 더해지면서 전쟁과 분단의 장소에서 평화와 통일의 공간으로 승화된 캠프그리브스. 전쟁과 평화, 상흔과 치유의 가치를 체험하며 다양한 문화 공연을 즐길 수 있는 DMZ 피스 플랫폼으로 거듭나길 기대해본다.

설치미술 작품 공간으로 활용하는 탄약고.  ⓒ 사진 홍하얀




캠프그리브스 전경.  ⓒ 사진 홍하얀


캠프그리브스, 어떻게 가면 되나요? 단체 당일 프로그램과 1박 2일 프로그램 중 선택. 전화 상담 후 홈페이지에서 예약 신청한다. 개인 1. 1박 2일 투어 경우 ‘오감 만족 파주 시티 투어 1박 2일’(티몬 판매) 이용 2. 당일 투어 경우 임진각에서 셔틀버스 이용(오전 11시, 오후 1시, 4시) 또는 ‘느껴보자 in DMZ 캠프그리브스 공감 여행’(티몬 판매) 이용 문의 www.dmzcamp131.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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