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2. 1960~1970년대 ‘서울, 인천특정지역’지정과 부천의 도시화
※ 본 글은 2024년 개최된 부천시·도시사학회 공동주관 제1회 부천역사학술대회 <근현대 부천의 도시 형성과 발전> 발제문 및 학술논문(최인영, 「1960~1970년대 ‘서울, 인천특정지역’지정과 부천의 도시화」, 『도시연구: 역사․사회․문화』38, 2025)을 정리한 글로, 부천시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1960년대 우리나라의 국토종합개발계획은 전국 단위의 균형 개발을 지향하였으나, 인력과 재원의 한계로 인해 성장잠재력이 큰 지역을 ‘특정지역’으로 지정하여 우선 개발하는 방식이 채택되었다. 이에 따라 1965년 ‘서울·인천특정지역’이 최초로 지정되었고, 이후 울산공업특정지역, 제주도특정지역, 태백산특정지역, 영산강특정지역, 아산~서산특정지역 등이 차례로 선정되었다. 이 가운데 ‘서울·인천특정지역’은 서울의 과밀화를 분산하고, 서울-인천 축에 수도권 공업지의 50% 이상을 배치하려는 목표를 지니고 있었다. 이를 위해 경인 간 교통시설 확충, 수자원 개발, 위성도시 건설 등의 사업이 추진되었다.
1962년 <경인지역 종합개발 조사기본보고서>, 건설부
1965년 국토계획기본구상에서 제시된 공업입지정책에 따라 노동집약적 경공업 육성을 위한 산업단지가 조성되었다. 한국수출산업공단 1~3단지가 서울 구로동과 가산동에 들어섰고, 4~6단지가 부평과 인천에 설치되었다. 또한 영등포 일대의 중소기계공장들이 서울 온수동과 경기도 부천시 역곡동 일대로 이전하면서 영등포기계공업공단이 형성되었다. 이와 함께 경인고속도로 건설이 본격화되면서 경인지역은 공업벨트로 재편되었다.
아이디얼미싱 소사공장준공(『경향신문』 1963.12.10.)
유한양행 소사공장 전경
부천은 서울과 인천 사이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으로 이미 식민지 시기부터 소비재 중심의 경공업이 발달하였다. 제조업체들은 주로 경인로와 경인철도 인근에 분포하였는데, 1936년 유한양행이 부천군 소사면 심곡리에 제약실험 연구소와 공장을 건설하였고, 1960년대에는 아이디얼미싱과 현대약품 등의 공장이 들어섰다. 송내동·소사동·역곡동·심곡동·원미동 일대에도 공장이 집적되며 기존 공장지대를 형성하였다.
경인고속도로 개통관련 기사(『서울신문』 1968.12.21.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 소장)
그러나 1967년 경인고속도로 건설공사 이후 부천의 산업지형은 한 차례 더 변모하였다. 내리IC 일대의 내동·도당동·삼정동에는 약 100여 개의 제조업체가 새로 입지하여 신공장지대를 형성하였다. 이는 경인고속도로를 축으로 한 교통 접근성 향상이 산업입지를 재편한 결과였다. 부천의 공업화는 경인철도와 경인국도를 중심으로 형성된 기존 산업 기반 위에, 고속도로라는 새로운 교통망이 결합되면서 더욱 확대되었다.
1970년대 들어 부천의 인구는 급격히 증가하였다. 이는 정부가 서울로의 인구집중을 억제하기 위해 서울 주변에 위성도시를 설치하고 인구를 분산시키고자 한 정책의 결과였다. 1965년 건설부는 ‘대도시 인구억제에 관한 기본방향’을 수립하였고, ‘서울·인천특정지역’ 사업에도 서울시 과대화 방지와 위성도시 건설이 포함되었다. 이후 1969년, 1970년, 1972년에 수도권 인구분산대책이 잇따라 발표되었다.
1971년 경인전철 기공식 광경(인천광역시교육청화도진도서관 소장)
이러한 정책적 흐름 속에서 1973년 부천군은 시로 승격되었고, 1974년 수도권 전철화 사업으로 경인전철이 개통되면서 서울과 인천이 전철로 연결되었다. 경인전철 개통 다음 해인 1975년 부천의 인구는 10만 명을 넘어섰으며, 1980년에는 20만 명에 이르렀다. 소사역은 부천역으로 개칭되었고, 역곡역과 송내역이 신설되었다. 소사의 복숭아밭에는 전철역이 들어서고, 그 일대에는 연립주택과 상가주택이들어서며 주거지가 형성되었다. 이제 부천은 전철로 1시간 이내에 서울에 도달할 수 있는 도시가 되었으며, 서울의 배후 주거지이자 공업도시로 자리매김하였다.
1973년~1984년 부천시 인구변화 그래프
당시 주택분양 광고에서 부천은 “우리나라 최대의 수출항으로 변모해가는 인천의 길목”이며, 고속도로·산업도로·전철 교통망을 갖추어 서울까지 30분 내외로 접근 가능한 신흥도시로 묘사되었다. 이는 국가 주도의 특정지역 개발과 산업입지 정책, 교통망 확충, 위성도시 건설 전략이 결합되면서 부천의 도시화가 가속화되었음을 보여준다.
1981년<부천상공연감>
결국 1960년대 국토종합개발계획과 ‘서울·인천특정지역’ 지정은 부천을 서울-인천 축의 산업 및 위성도시로 편입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경인고속도로와 경인전철의 개통은 산업과 인구의 유입을 촉진하여 부천을 급속히 성장하는 도시로 전환시켰다. 부천의 도시화는 이러한 국가 주도의 지역개발 전략 속에서 형성된 공간적·인구학적 변동의 산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