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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군의 탄생과 행정구역의 변화

부천군의 탄생과  행정구역의 변화
 

2023년은 부천시 승격 50주년, 부천군 탄생 108주년을 맞는 해이다. ‘부천’이란 지명은 1914년 일제강점기에 처음 만들어졌다. 하지만 오늘날 ‘부천시’라는 명칭의 연원이 되기 때문에 그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한 현재 ‘부천’의 행정구역은 조선시대 부평도호부 당시 굴포천과 항동천을 지리적 경계로 해 굴포천 동쪽 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흥미롭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른 부천군 관할구역(도서 6개 면 제외)]1)

‘부천(富川)’이라는 지명은 부평의 ‘부(富)’와 인천의 ‘천(川)’을 조합해서 만들어졌다.2) 이때 ‘부천군’이 처음 신설되었는데 부천군의 행정구역은 당시의 부평부 15개 면 전역, 개항장을 제외한 인천부 12개 면, 강화의 4개 도서(島嶼), 남양부의 2개 면을 통폐합해 15개 면 154개 리의 광역을 갖게 되었다. 이후 인천 지역이 경인철도역과 제물포항(인천항)을 중심으로 발달, 확장됨에 따라 1936년에서 1940년까지 부내면(부평구), 서곶면(서구), 다주면(미추홀구), 남동면(남동구), 문학면(연수구) 등 현재의 인천 지역을 구성하는 5개 면이 인천부로 편입됐다. 이에 따라 1973년 시 승격 전까지 부천군의 행정 관할구역은 소사읍(계남면에서 명칭 변경 및 읍 승격), 오정면, 계양면, 소래면을 비롯한 도서지역인 영종면, 북도면, 용유면, 대곶면, 영흥면, 덕적면 등 10개 면(1개 읍 포함)만 남게 되었다. 아울러 1963년에는 오정면의 오쇠리 지역 일부와 소사읍의 고척리, 개봉리, 오류리, 천왕리, 항리, 온수리 지역이 서울시로 편입되면서 그 관할구역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이처럼 부천군은 광복 후 점차 축소되는 경향을 보이다가 1973년에 부천시로 승격되는 경사를 맞았다. 그러나 기존의 부천군 행정구역인 9개 면은 인접 시・군으로 편입되고, 기존의 1/10에 해당하는 행정구역인 소사읍만을 가지고 부천시로 승격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맞게 되었다. 당시 소래면은 시흥군, 오정면과 계양면은 김포군, 서해도서 영종면, 북도면, 용유면, 대부면, 영흥면, 덕적면은 옹진군에 편입되었다. 비록 오정면은 2년 후 1975년 다시 부천시에 편입되면서 굴포천의 동쪽 지역, 즉 ‘굴동(掘東)’만이 현재의 부천시 행정구역으로 남는 현재의 모습이 완성되었다.

1973년 부천군의 부천시 승격은 도시발전을 촉진하는 경사였지만 한편으로는 계양면과 소래면을 김포와 시흥에 내어준 것은 상당히 아쉽다. 시흥과 김포에 내어 준 계양산과 소래산은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부천을 상징하는 산이었고, 지리적으로나 지형적으로 다른 지역을 구분하는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계양산과 소래산의 상실은 단순한 영토 축소가 아닌 부천의 문화와 역사의 상실로 이어졌기에 더더욱 아쉬운 대목이다.

장정규 (부천문화원 학예연구사)

 

1)1930년 경기도 부천군 관내도(소하4년 경기도부천군군세일반) 1/250,000 축척 편집 (종로도서관)
2)1913년 8월 6일(경기도장관이 총독부 정무총감에게 보낸 부군폐합 관련 보고서)

- 자료 출처 : 군세일반(1930년), 부천시사(2002), 국가기록원 소장자료(1913. 8. 6.) 등
 

※ 이곳에 실린 필자의 의견은 부천시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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