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기 외국인 선교사가 세운 종교 계통의 학교나 조선의 지식인들이 세운 민족주의 계열의 학교, 국가 주도의 학교 등 신식 교육기관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신식 교육기관은 주로 한성에 설치되어 부천 지역은 여전히 부평향교와 서당을 중심으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1929년 간행된 『부천군세일반(富川郡郡勢一班)』에 의하면 당시 부천군의 서당은 66개소이며 모두 사립이었다.
』(1929) 종로도서관 소장.jpg)
『부천군군세일반(富川郡郡勢一班)』(1929) 종로도서관 소장
1895년(고종 32년) 7월 19일 소학교령이 제정되면서 현재 초등학교의 전신 소학교가 처음 등장하였다. 1909년 11월 17일 대한매일신보에는 ‘여상대·이계현·윤백헌 등이 출자하여 부평군 옥산면 소사리에 설립한 사립 계남학교는 개교 이후 학생 수가 꾸준히 늘어나 60여 명에 이른다.’는 기사가 실려 있다. 따라서 계남학교의 개교 시기는 1909년 이전으로 추정되며, 부천 지역 최초의 사립 소학교로 보여진다.

계남학교 설립 기사 『대한매일신보』 1910년 1월 15일 자
부천 지역 최초의 공립소학교는 소사공립심상소학교(현 부천남초등학교)로, 1913년 6월 4일 부평군 석천면 심곡리 소사공립심상소학교 설립이 인가되었다. 정확한 개교일자는 확인할 수 없지만, 소사공립심상소학교는 일본인 소학교였기 때문에 인가 시기와 개교 시기에 큰 차이가 있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1915년 소사소학교(소사공립심상소학교) 학생 33명이 서울에 진학했다는 기사를 보아 1915년 당시 학교가 운영중이었음을 알 수 있다.

「소사공립심상소학교 설립 인가」 고시 『조선총독부 관보』 제254호 1913년 6월 6일
1925년 소사보통학교(현 부천북초등학교)가 개교하였다. 소사보통학교는 부천군 관내 조선인을 대상으로 한 첫 공립 교육기관이었다. 1929년 부천군 내 조선인 학교는 소학교 1개소, 보통학교 7개소, 일반학교 1개소로 총 9개소였으며, 재학생은 남학생이 3,671인, 여학생이 432인으로 총 4,103명에 달해 학교 수에 비해 학생 수가 상당히 많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1930년대까지 확인가능한 공립초등학교 증설은 1932년에 오정공립보통학교(현 오정초등학교)로 확인된다.
 조선인 (아래) 일본인 『조선교육요람』(1919).jpg)
조선인, 일본인 교육시설 현황표 (위) 조선인 (아래) 일본인 『조선교육요람』(1919)\

「소사각소교 입학난격심 『매일신보』 1940년 3월 17일 자
1930년대~1940년대 부천군 내 인구 유입은 지속적으로 증가하였으며, 이에 따라 교육 시설 확충은 이미 사회 문제로 인식되고 있었다. 학교시설 부족으로 교육난이 심화되자, 부천군 일대에서는 정규 학교 교육을 보완하기 위한 야학·강습소 등이 성행했다. 부천군민의 높은 교육열로 야학과 강습소는 학생들의 성적도 좋았고, 꾸준히 개소한 것으로 보인다. 1942년 부천군 내 학교의 정원 초과로 입학하지 못한 학생수가 6~700여 명에 달했다는 보도를 통해 당시 부천군 관내 초등교육기관의 부족과 이를 타개하려는 부천군민들의 노력을 알 수 있다.

「소사학술강습소 개소」 『매일신보』 1942년 6월 7일 자